삼성이 1일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 철수를 전격 선언했다.
지난 5월25일 계열 MRO 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IMK)의 사업 영역을 계열사와 1차 협력사로 한정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완전히 물러난 것이다.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몸을 최대한 수그렸지만, 오히려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창구라는 식으로 비난이 더욱 거세지자 아예 손을 떼는 초강수를 둔 셈이다.
삼성은 이 회사 지분을 전부 내놓겠다고는 했지만,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인수 회사와 매각 일정은 밝힐 수 없다는 뜻만 일단 내놨다.
중소기업과 동반성장 및 상생협력에 부응한다는 원래 의도에 충실하려면 유관단체나 협회에 파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58.7%에 이르는 삼성 계열사 지분 전체를 중소기업 및 유관기관에 넘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기준 IMK의 시가총액이 9천400억원인 만큼, 매각대금이 적어도 5천여억원에 달하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서 이를 넘겨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일단 "우리로선 취지에 부합하는 원매자가 나타나면 가장 좋지만, 우리가 원매자를 지정해 인수해라 마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원칙적 설명만 내놓았다.
삼성은 지분 전량을 매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매각을 원활하게 하려고 지분 인수회사가 원하면 최소한의 지분은 보유할 수도 있다는 태도다.
또 삼성 계열사는 그간의 거래 관행을 지키고 구매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IMK와 거래 관계를 유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재계 안팎에선 삼성이 자발적 결정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결국 이번 결정의 이면엔 지난 5월 발표한 1차 대책에 만족하지 못한 정부 및 중소기업계의 고강도 압박이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을 위시한 대부분 대기업 계열 MRO들의 사업영역 최소화 결정 이후에도, 물량 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왔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 영역을 제한하고 중소기업 추천 사외이사 선임, 이사회 산하 동반성장 자문기구 설치 등 다각적인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사회적 논란이 가시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아예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사업 철수 결정이 다른 대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지난 5월에도 삼성의 영업 제한을 시작으로 LG서브원 등 다른 기업이 줄줄이 비슷한 대책을 내놓은 만큼, 재계 전반이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의 소유권을 비롯해 기업지배 구조 등이 복잡하게 얽힌 만큼 삼성과 같이 과감한 지분 매각 결정까지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획기적인 2차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대기업 계열 MRO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곳은 LG의 서브원(3조8천478억원). 이어 삼성 IMK(1조5천492억원), 포스코의 엔투비(6천36억원), 웅진홀딩스(5천370억원), 코오롱 코리아 이플랫폼(4천639억원), SK의 코리아 MRO(1천28억원) 등 순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