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확산 예측 기술

테헤란로에서 오염물질이 전파되는 경로를 모사한 것
테헤란로에서 오염물질이 전파되는 경로를 모사한 것

 1995년 3월 20일 아침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 차량 5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든 봉지가 발견됐다. 봉지는 신문지에 싸여 있었고 뾰족한 것으로 찌른 듯한 흔적이 보였다. 이 봉지에서 새어나온 가스에 12명이 죽고 50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유명한 ‘옴진리교’ 사건이다. 무색무취로 알려진 죽음의 물질 ‘사린’ 가스는 삽시간에 전동차 내부, 지하철역으로 퍼져 나갔다.

 지난 3월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방사능 물질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것인지였다. 우리 정부는 방사능이 국내에 유입된다는 얘기는 ‘루머’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독일기상청이 ‘방사능 물질이 태풍을 타고 한반도로 직접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또다시 우려를 낳았다.

 두려움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더 커진다. 맹독성 가스나 방사능이 유출됐을 때 심한 공포에 떠는 것은 공기의 흐름을 예측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공기에 떠다니는 오염 물질이 어디로 확산될지 알 수 있다면 이를 막을 대책도 세울 수 있다. 괜한 루머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일도 줄어든다.

 ◇확산 경로를 예측하려는 시도=과학계에서는 변화무쌍한 현상을 풀어보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50여년 전 시작된 기상 예보가 한 예다. 1995년 사상 최악의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 ‘씨프린스호’ 사건이 있은 지 1년여가 흘렀을 때 국내 한 신문은 홍기용 선박해양공학연구센터 박사팀이 PC로 기름 오염 범위를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푸른바다’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이전까지는 기름띠 확산 경로를 뱃사람의 경험이나 바람의 방향 등 기초적인 분석으로 예상했다. 정확하게 들어맞을리 없다.

  홍 박사팀 연구로 우리나라에서도 PC 힘을 빌려 예측 확률을 좀 더 높이는 시대가 열린 것. 해역의 바닷물 흐름과 기상정보 등 정보를 입력하면 PC에서 이를 종합해 기름띠가 어디로 흘러갈지 대략적으로 알려줬다.

  다만 1996년 일반 PC는 펜티엄 프로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했다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보급용 고성능 CPU 처리 속도는 200㎒ 전후. 지금 일반 PC CPU가 3.4㎓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름띠가 퍼지는 속도보다 빨리 PC가 오염 경로를 예상했을지는 의문이다.

 ◇100% 확률에 도전한다=연세대학교 WCU 계산과학공학과에서는 최근 역삼역에서 떨어뜨린 오염 물질이 테헤란로 주변으로 확산되는 모형을 만들었다.

 입자를 일일이 공기 중에 띄워서 개별 입자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본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서 도심 화학 테러 등에 대처하기 위한 연구다. 방정식을 만들어서 조건값을 대입하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와 연구실 옆에 구축한 컴퓨터 클러스터에서 계산을 한다. 컴퓨터 화면에는 오염물질이 뭉쳐 있는 정도에 따라 붉은색부터 하늘색으로 표시된다. 이창훈 교수는 “정확도를 조금 희생하면 몇 분 만에 입자 이동 방향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팀이 이용하는 나비에-스톡스(Navier-Stokes) 방정식은 날씨·해류·별의 움직임 등 유체 흐름을 연구해 입자가 확산되는 방향을 찾아주는 수식이다.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도 몇 천년이 걸려야 해를 구할 수 있는 공식이라고 설명한다. 아직도 이 방정식의 3차원 해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방정식은 유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방정식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단순화해서 풀어낸다.

 이창훈 교수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다양하고 컴퓨터 성능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100% 확률로 예측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하다”며 “획기적인 수학적 알고리즘이 발명되거나 수치해석 방법이 제시된다면 예측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슈퍼컴퓨터 발전 속도에 비춰 봤을 때 프로세서 성능이 높아지고 서버 용량이 대폭 늘어나는 30~40년 후라면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을 풀어볼 만한 여건이 될지도 모른다.

 해외에서도 확산 예측 기술 연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는 다수의 확산 기술 컨설팅 회사가 존재한다. 이들은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의뢰를 받아서 확산 모델을 설계하고 정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화재·오염·질병·생화학무기 등 공기나 물이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 연구를 주로 수행한다. 영국에서는 기상청에서 연구개발(R&D)팀을 꾸리고 모델 개발을 하고 있다.

  ◇확산 예측 기술의 다양한 모델=미 연방우주국(NASA)과 스탠퍼드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원들이 모인 ‘난류 연구센터(CTR:Center for Turbulence Research)’에서는 다양한 예측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정교한 계산식으로 쓰이는 건 직접수치모사식(Direct Numerical Simulations)이다.

 난류(불규칙한 기체·액체의 흐름)까지 고려해서 만든 모델이다. 크게는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양, 작게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올 때 기포가 생기는 모습까지 측정할 수 있다.

 일정한 범위 공간을 격자무늬로 촘촘하게 쪼갠다. 각각의 정사각형에 입자가 들고나는 경우의 수를 측정해서 종합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액체나 기체 분자 수억개를 알갱이라 가정하고 수도꼭지에서 알갱이가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풍향·풍속·난류에 따라 각각 알갱이 위치를 계산한다고 보면 된다.

 대와류모사식(LES:Large Eddy Simulations)은 DNS처럼 공간을 정사각형으로 조각내지만 각 조각의 크기가 크다. 정확성이 DNS보다 떨어진다. 레이놀즈 평균 나비에-스톡스 모사(RANS) 해석 모델은 공력해석 분야에서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받고 있지만 해석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라그랑지안 입자 확산 모델(LPDM:Lagrangian Particle Dispersion Model)은 원자로에서 배출된 방사능 물질 중에서 요오드·세슘 같은 독성 물질 향방과 농도를 계산해내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이 기술들에 기반을 두고 더 복잡하거나 더 단순한 모델을 또 만들어낼 수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