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얼굴인식`의 명과 암

 고등학교 동창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했다. 동창이 올려놓은 사진 가운데 하나를 클릭한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다녀온 모양이다. 사진에 나온 인물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한 곳에 시선이 멈춘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사람인데 누구인지 가물가물하다. 얼굴 위로 마우스 포인터를 갖다 댄다. 그가 누구인지 자동으로 알려준다. 10여년 전 옆 동네에 살던 친구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요즘은 어떻게 지낼까?’ 간단한 검색을 거쳐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동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이 지난해 도입한 얼굴인식 기능을 사용하면 이 같은 탐색이 가능하다. 사진 속 얼굴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얼굴이 학력·이메일·관심사 등 사용자가 입력한 어떤 내용보다도 강력하고 정확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사진으로 간단한 친구 찾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얼굴인식 시스템을 토대로 잊힌 친구를 다시 찾게 해준다는 주장은 사용자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이달 초 독일에서는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얼굴인식 기능에 위법 판결을 내렸다. 독일 정보보호법에 저촉된다는 이유에서다. 페이스북은 논란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얼굴인식 기능 사용 여부를 ‘옵션(선택)’ 방식으로 변경, 진화에 나섰다.

 ◇곳곳에서 활용되는 얼굴인식 시스템=이번 판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얼굴인식 시스템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시스템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더 화사한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얼굴인식 시스템 덕이다. 연예인과 얼굴 일치 여부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이 소프트웨어(SW) 힘을 빌렸다. 노트북 등 개인용 정보기술(IT)기기에도 얼굴인식 시스템 탑재가 늘고 있다. 기기를 사용하려면 우선 얼굴인식으로 본인임을 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공상과학(SF) 영화 역시 얼굴인식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실제로 표현할 수 없는 생명체의 얼굴 움직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물론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하는 분야는 보안업계다. 금융거래나 제한구역 출입 시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에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강력한 판별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굴인식을 지문인식이나 홍채인식보다 발달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폐쇄회로(CC)TV에는 일찌감치 이 SW가 탑재되고 있다.

 러시아 한 은행은 현금자동입출기(ATM)에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용 시 얼굴로 본인 여부를 확인, 뜻하지 않은 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인천공항공사도 지난해 얼굴인식 시스템을 갖춘 출입국 심사기를 들여왔다. 출입국자가 기기에 전자여권을 대면 얼굴 특징을 분석, 즉석에서 촬영한 사진과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해준다.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기기 14대를 추가 도입, 장기적으로 지문인식 시스템을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세계적인 IT 기업도 얼굴인식 시스템 활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페이스북을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애플 등도 관련 기술 상용화에 한창이다. 구글은 지난달 얼굴인식 기술을 보유한 피츠버그 패튼 레코니션(피트팻)을 인수하기도 했다.

 각국 사법당국도 얼굴인식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이다. 영국 경찰은 이달 초 런던에서 기물 파손, 방화 등 폭동이 확산되자 가담자 색출을 위해 얼굴인식 시스템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전에도 이 시스템을 제한적으로 활용했지만 더욱 개선된 SW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 경찰은 이르면 내달부터 얼굴과 홍채를 스캔해 용의자를 식별할 수 있는 모바일기기를 지급할 방침이다. 이 기기는 약 1.5m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 얼굴을 찍어 범죄기록 데이터베이스(DB)에 접속하면 범죄 용의자 여부를 확인해준다. 스마트폰에 부착해 소지도 간편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명백한 인권 침해’ 역기능도=사회 곳곳에서 얼굴인식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독일에서 불법 판결을 받은 페이스북은 사용자에게 동의를 얻지 않은 채 DB를 구축한 점이 문제가 됐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올린 사진을 자사 서버 DB에 저장한다. 얼굴인식 SW는 DB에서 인물의 주요 특징을 추출해, 다른 사진에 찍은 얼굴과 비교·분석을 거쳐 일치 여부를 판단해준다. 이 과정에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용자의 바람과 달리 다른 사용자에게 무분별하게 정보가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다른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마음먹으면 상업적인 정보 거래에 이용될 수 있으며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가 타인에게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명백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침해인 셈이다.

 알렉산드로 애퀴스티 미국 카네기멜론대학(CMU) 교수팀은 더욱 충격적인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얼굴인식 SW와 페이스북 내 개인정보, 사회보장번호 유추 알고리즘으로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속 인물의 사회보장번호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보장번호는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 격이다.

 영국과 미국 경찰 사례도 인권 침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국 경찰은 폭동 가담자를 검거하기 위해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진을 수집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경찰이 보급 예정인 용의자 식별 모바일기기는 주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데 기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경찰의 사진 채증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이 오래전부터 집회·시위 참가자 사진을 찍어 영상판독 시스템에 입력, 관리해왔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들은 집회 현장에서 찍은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데 얼굴인식 시스템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이 무분별하게 찍은 사진 속 인물은 결국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 관리되는 인권 침해를 당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람이 일일이 대조할 뿐이라며 시스템 사용을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씨는 “만약 경찰이 집회 참가자 판독에 얼굴인식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 확실하다면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얼굴인식 시스템=사람 얼굴에 나타난 특징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눈·코·입 위치를 기반으로 한 인식은 물론이고 피부색이나 명암 차이로 특정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정보기술(IT)기기를 비롯해 각종 보안 영역에서 신원 확인에 사용된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