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도 자체 운용체계(OS)를 가지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OS를 활용할 수도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발표된 다음날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앞으로 구글의 전략에 따라 다양한 ‘멀티 OS’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판세에 따라 OS와 단말업체 간 다양한 합종연횡이 가능할 전망이다.
모바일 OS 패권 전쟁은 구글이 휴대폰 제조에 직접 뛰어든 데 이어 HP가 ‘웹OS’를 사실상 매물로 내놓으면서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독자OS ‘바다’ 개발 역량을 강화할 조짐이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HP의 ‘웹OS’가 휴대폰 제조사나 MS 등으로 넘어간다면 경쟁 구도는 더욱 복잡해진다.
전문가들은 OS 패권전쟁의 관전 포인트는 구글과 애플 ‘2강’에 대적할 ‘신흥강자’의 탄생 여부로 보고 있다. 노키아 ‘심비안’에 이어 지난 주말 HP가 독자 OS ‘웹OS’기반 스마트기기 사업을 전격 포기하면서 소수 메이저 중심으로 재편이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도전-응전-퇴장=OS 전장은 세 가지 색깔이 뚜렷해지고 있다. 구글과 모토로라와 결합에 삼성전자와 MS의 새로운 도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구글과 애플은 차세대 OS 출시로 아성 지키기에 나섰다.
반면에 노키아와 HP는 독자 OS를 사실상 포기했다. 리서치인모션(RIM)은 시장점유율이 1년새 7%포인트나 빠지며 추락 중이다. HP ‘웹OS’와 RIM의 ‘블랙베리 OS’는 인수합병(M&A) 최대 매물로 회자될 정도다. 쓸쓸한 퇴장의 운명을 맞고 있는 셈이다. 결국 구글과 애플에 MS와 삼성전자가 도전하는 판세로 빠르게 재편될 조짐이다.
◇MS의 약진이 최대 변수=빅2 중심의 역학관계는 PC시장의 절대강자 MS의 모바일 대공세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바다’를 육성하더라도 현재 자체 보유한 소프트웨어(SW) 역량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스마트폰이 전화기보다 컴퓨터에 더 가깝기 때문에 MS가 전략적 파트너 노키아와 함께 빠르게 3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구글처럼 오픈시스템을 적용하는 MS의 혁신 능력은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고 분석했다.
윤정호 로아그룹 이사는 “구글이 모토로라와 결합하면서 향후 MS의 영향력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며 “3강, 2강1중, 2강1약 등 MS의 시장 지위에 따라 구글에 의존하는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의 운신의 폭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 ‘바다’ 전략 딜레마=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최근 ‘바다’ 개발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특허·M&A 이슈가 잇따르면서 독자OS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도 ‘바다’ 개발 역량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하지만 바다는 아직 안드로이드·iOS·윈도모바일 등에 비하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단기간에 메이저 OS로 떠오르긴 힘든 처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드로이드나 윈도모바일처럼 모든 휴대폰 제조사에 공개하는 ‘개방형 전략’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과연 삼성전자가 이를 공개하면 HTC·LG전자·팬택 등이 이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당장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경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경쟁사가 주도하는 OS에 ‘들러리’를 설 리가 만무한 셈이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MS가 3강 구도를 형성하지 못할 땐 꼼짝없이 구글에 끌려가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전략은 그동안 중저가 스마트폰용에만 투입하던 ‘바다’를 프리미엄폰에 적용하는 방안이다. 만약 HP ‘웹OS’를 인수하면 독자 OS뿐만 아니라 ‘멀티 OS’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더욱 많아진다.
윤정호 이사는 “구글이 모토로라를 통해 안드로이드 최적화 등을 시도하겠지만 글로벌 시장의 역학구도상 삼성전자 등 다른 단말 제조사를 배제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다만 미국 시장에 강한 모토로라가 미국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만큼 삼성은 바다가 강한 유럽 시장에는 안드로이드보다 바다폰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지역별 차별화 전략 구사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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