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61>

체신부는 1990년 6월18일 통신개발연구원에서 통신사업구조조정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체신부는 1990년 6월18일 통신개발연구원에서 통신사업구조조정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한미통신회담<4>

 

 1991년 2월 6일.

 열대 휴양지 하와이 터틀베이호텔. 한미통신회담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새벽 3시경. 여명(黎明)을 깨고 고성이 터져 나왔다.

 “당신 소리지르지 마라.”

 한국 측 수석대표인 이인표 체신부 통신개방연구단장(정통부 통신정책지원국장, SK텔레콤 고문 역임)의 격한 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이런 식이면 더 이상 회담하지 않겠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순간 회담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 단장의 화난 모습에 미국 측 낸시 애덤스 수석대표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양측은 서둘러 정회를 선언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회의를 속개합시다.”

 1년여 만에 2월 4일부터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통신회담의 마지막 날 분위기는 살벌했다.

 통상회담은 이익을 다투는 자리다.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이인표 단장을 수석대표로 하고 체신부와 경제기획원, 외무부, 재무부, 상공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9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낸시 애덤스 미무역대표부 아·태 담당부대표보를 수석대표로 해 5명이 나왔다.

 양측은 통신서비스시장 개방범위와 시기 등 서비스와 통신기기 및 정부조달 3개 분야를 논의했다. 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은 5일까지 열기로 했던 회담을 6일까지 하루 연장했다. 우선협상국 지정에 따른 협상시한인 2월 23일을 앞두고 있어 회담장 분위기는 비장했다.

 한미 양측은 48시간 마라톤회담에 들어갔다. 한숨도 못 자고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국가이익을 지키겠다는 정신력 대결이었다. 양측이 가장 대립한 분야는 국제VAN(부가가치통신망) 개방시기였다. 미국은 조기개방을 요구했다.

 회담 마지막 날 새벽.

 미국 상무부 관계자가 한국 측이 개방할 수 없다는 사안을 반복적으로 캐 물었다.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한국 측이 답변하면 또 물었다. 미국 측의 목소리 톤이 차츰 높아졌다. 이 단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급기야 이 단장이 고압적 태도를 보인 상무부 관계자를 향해 호통을 친 것이다.

 한 시간 후 속개된 한미통신회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이 단장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정말 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미국 측은 판단했다. 미국 측은 그간의 강경자세를 벗어나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자고 요구했다. 수석대표 얼굴은 상황에 따라 다면적일 필요가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이인표 단장의 회고.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상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양측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국가 이익이 달린 문제였잖아요. 여러 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회담에 참석했던 김창곤 체신부 정보통신과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LG유플러스 고문 )의 기억.

 “그 당시 미국은 국제VAN서비스 개방에 관심이 컸습니다. 그 업무가 제 소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48시간 동안 한잠도 못 자고 회담을 하는데 이 단장의 배포와 협상력은 대단했습니다. 이 단장은 회담전략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해 한국 측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습니다.”

 이 회담에서 한미 양측은 통신서비스와 통신기기 및 정부조달분야에 관한 주요 논의내용을 정리한 ‘91 양해록’을 작성했다. 양해록에서 양측은 통신장비 인증기준을 비롯한 강제표준 제정 절차와 이와 관련한 불만처리 및 이의제기 등은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보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외국기업의 한국시장 참여도 보장키로 했다.

 양측이 이견을 보였던 국제VAN 전면개방시기 문제는 그해 5월 협상 때 재론(再論)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양측이 양해록을 교환하자 미무역대표부는 2월 22일 한미통신협상 기간을 다시 1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다시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체신부는 이에 앞서 1990년 4월 11일 국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체신부는 전파관리국장에 박성득 통신정책국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을, 통신정책국장에 이인학 중앙전파감시소장(현 중앙전파관리소, 우정국장, 데이콤 감사 역임)을 임명했다. 그해 7월 4일 통신개방연구단장에 이인표 총무과장을 승진발령하고 문영환 단장은 전파심의관으로 전보했다.

 이로 인해 한미통신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도 교체된 것이다.

 전례를 따른다면 이인학 통신정책국장이 수석대표를 맡아야 했다. 하지만 이인표 개방단장이 수석대표를 맡았다. 대책마련과 회담을 한 사람이 맡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1990년 1월 해외근무를 마친 구영보 서기관(우정사업본부장,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장 역임, 현 SK텔레콤 고문)이 개방단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그는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UR/GNS)에 대비, 통신분야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구영보 서기관의 증언.

 “UR에 대비해 스위스 제네바에 매달 한 번꼴로 출장을 갔습니다. 토요일에 출발해 현지에서 협상 관련자료를 얻어 내용을 정리, 곧바로 팩시밀리로 서울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밤 비행기로 돌아왔습니다. 강행군이었죠. 1990년 10월에 열린 전문가회의에는 제가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체신부는 1990년 7월 13일 통신시장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1차 구조조정이었다. 이 정책의 기본방침은 ‘선(先)국내 경쟁, 후(後)개방’이었다.

 조정안의 핵심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독점해온 전화사업 중 국제전화는 9월부터 데이콤(현 LG유플러스)의 참여를 허용하고 시외전화는 1992년 하반기 이후 국제전화경쟁도입성과를 고려,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기간통신사업자로부터 회선을 빌려 다양한 정보 축적·처리·전송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은 8월 다수 경쟁체제에 들어가고 차량·휴대전화·무선호출 등 이동통신사업도 1992년 하반기 이후 복수경쟁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체신부는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2단계로 구분, 1단계는 1990년부터 국제전화를 경쟁시키고 2단계로 1992년 상반기까지 이동통신사업 등도 경쟁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데이콤 측은 “전화교환시설확보 등 준비기간을 거쳐 국제통신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일본, 홍콩 3개국을 중심으로 오는 1991년 7월부터 국제전화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체신부는 이런 구조조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1989년 3월 20일 정보통신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신태환 전 서울대 총장(작고)을 위원장으로 학계와 산업계, 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 96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운영은 통신개발연구원(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맡았다. 위원회는 정보통신발전 중장기 계획과 경쟁정책, 서비스정책, 정보통신산업정책, 뉴미디어 정책 등 5개 분야를 다룰 위원회와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방안을 마련했다.

 이 위원회는 그해 7월 말까지 45회에 걸쳐 논의한 정보통신발전방안을 종합 건의서로 정리했다. 위원회는 최종안을 그해 11월 27일 체신부에 제출했다.

 협의회는 건의서에서 통신시장 개방의 기본원칙은 ‘선(先)국내 경쟁, 후(後)개방’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경제 혹은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 유보해야 할 사업은 대외개방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신부는 1990년 6월 18일 통신개발연구원에서 통신사업 구조조정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통신사업의 경쟁체제 도입은 불가피하나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시장 개방시기나 내용 등을 놓고는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 특히 기존사업자인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데이콤 측의 주장이 맞섰다.

 조병일 한국전기통신공사 기획실장(한국이동통신 사장 역임)은 “이 정책은 공사 이익을 데이콤에 나눠 주는 것”이라며 “수익이 나는 국제나 시외전화는 경쟁하고 연간 적자가 7000억원에 달하는 시내전화는 그대로 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손익수 데이콤 상무(데이콤 사장 역임)는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면서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통신강국이 된다”며 “우리도 경쟁체제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다른 입장을 밝혔다.

 방석현 서울대 교수(통신개발연구원장 역임, 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쟁도입으로 한국통신의 수익성이 감소하면 공공투자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므로 이의 대책과 데이콤의 이익이 개인이나 단체에 가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극제 체신부 장관 자문관(현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은 “이 조치로 외국기업들이 한국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통신시장에 참여를 요구해 올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을 우선협상대상으로 지정한 상태이므로 우리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태 STM 사장(현 LG CNS, 한국SW산업협회장 역임, 현 프리씨이오 명예회장)은 “체신부 안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보다 15~20년 뒤진 통신업계의 기술수준을 4~5년 정도로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인학 통신정책국장은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화사업에 경쟁이 이루어지면 시장이 확대돼 점유율이 떨어지더라도 수입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며 “공정경쟁을 위해 데이콤도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국책사업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독자적으로 시외 및 국제전화 설비를 갖추도록 해 별도의 특혜를 주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체신부는 이 같은 의견을 수렴해 당초 안보다 다소 후퇴한 최종안을 7월 13일 발표한 것이다.

 미국 측의 통신시장개방 요구에 앞서 국내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전에 대비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