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샤페로닌

[사이언스] 샤페로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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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비롯한 생물체 몸 안에는 ‘샤페로닌’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다른 단백질의 구조유지, 구조 재형성, 단백질 이동, 유전자 복제, RNA(리보핵산) 분해를 비롯해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다역 배우 샤페로닌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발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생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어떻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원인의 단초를 찾은 것이다.

 현대 생물학에서 풀리지 않은 화두중 하나인 ‘하등 단세포가 어떻게 수억개의 세포들과 서로 소통하며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고등 생명체로 진화했는가’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를 이 샤페로닌을 통해 끄집어 낸 것이다.

 김재연 경상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는 샤페로닌이 세포 간 신호전달물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규명해냈다. 김 교수의 연구결과는 ‘전사인자의 세포 간 이동을 촉진하는 샤페로닌’이라는 제목으로 ‘사이언스’ 26일자에 게재됐다.

 ◇서로 대화하는 세포들=줄기세포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세포나 장기로 성장하는 일종의 모세포다. 줄기세포는 위치하는 장소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하는 세포로 성장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세포와 세포사이의 통신에서 찾을 수 있다. 심장에 위치한 줄기세포는 주변의 세포들과 통신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심장관련 조직으로 성장한다. 혈관세포에 위치하면 혈관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이 역시 자신이 처한 위치를 주변세포와의 연락을 통해 안다.

 그렇다면 세포 간 통신은 어떻게 이뤄질까.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식물에서 세포 간 신호전달과 물질교환은 식물 특유의 나노채널을 통해 일어난다. 나노채널은 극도로 미세한 통로일 뿐이다.

 전사인자(특정 유전자의 전사 조절 부위 DNA에 결합해 그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거나 억제하는 조절 단백질)는 생체고분자 단백질인데, 세포 간 나노채널을 통해 이동하는 대표적인 신호물질이다. 전사인자와 같은 덩치 큰 생체고분자가 어떻게 미세한 나노채널을 통해 이동하며 정상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늘 궁금증 대상이었다.

 ◇샤페로닌의 마법=연구팀이 발견한 것은 샤페로닌의 새로운 역할이다. 전사인자가 나노채널을 통과할 수 있도록 전사인자를 변신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덩치 큰 전사인자를 스스로 구조를 해체, 나노채널을 통해 이동한 뒤 다시 원래의 상태로 재변형시키는 신호물질로 작용한다. 마치 휴대폰의 음성·영상 신호가 전파로 변조돼 이동한 다음, 다시 음성·영상신호로 복조되는 과정과 닮았다. 샤페로닌은 전사인자가 변신할 수 있도록 하는 휴대폰 단말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재연 교수는 “샤페로닌이 이러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만 있었지 실제 그러한 역할을 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샤페로닌의 역할을 통해 식물의 생산성에 획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진화의 단초도 제공=연구팀의 연구결과는 식물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이를 동물로 확장하면 하등 단세포 생명체로부터 고도로 분화되고 조직화된 생명체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도 제공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식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에도 유사한 나노채널이 있는데 아직 연구가 초보단계”라며 “바이러스가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이동을 하는데 샤페로닌의 역할과 나노채널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모든 세포는 잠재성을 가졌는데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모르는 게 현재 생물학의 한계”라며 “세포 환경을 이해해야만 고등생물의 분화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샤페로닌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초기 수준이다. 나노채널 관련 연구는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 분야인 만큼 규명하기가 까다롭다는 어려움이 있다. 연구팀은 식물을 토대로 한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향후 동물 분야로 확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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