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기름값 `흥청망청` 소비에 제동

물가구조 TF `대리인 문제` 주목..개선방안 마련

A 공기업의 관용차량 기사는 주유 전용 법인카드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도로변의 주유소 아무 곳에나 들러 기름을 넣는다. 운전자와 차량관리자는 기름 가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법인카드로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면, B 공기업은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 등을 통해 저렴한 주유소를 수시로 검색해 기름 값이 싼 주유소에서 주유티켓을 선(先)구매한 뒤 기름을 넣도록 하고 있다.

두 기업 중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예산을 더 절약하는 쪽은 어디일까. 당연히 B 공기업이다.

기획재정부 물가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는 법인 차량의 경우 주유를 하는 사람(차량 관리직원)과 비용 지불자(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값비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들의 표본을 뽑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은 A 공기업처럼 주유 전용 법인카드로 기름 값을 `흥청망청` 쓰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B 공기업처럼 저렴한 주유소를 이용하는 곳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가령,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상대적으로 값을 비싸게 매기는 주유소들이 성업 중이었다.

물가구조개선 TF가 조사한 바로는 지난 24일 기준 국회 앞 모 주유소의 리터 당 휘발유 가격은 2천295원에 이르렀다. 서울 평균 2천13원, 전국평균 1천938원에 비해 10%나 비싼 가격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많은 전문가가 국회 앞 주유소처럼 비싼 주유소들이 영업할 수 있는 것은 법인차량의 대리인문제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며 "주유소 간 가격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법인 차량의 대리인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리인 문제`(Agent Problem)란 한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의 이해와 직결되는 일련의 의사결정과정을 타인에게 위임할 때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현상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흔히 대리인 문제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자신이 소유한 회사를 위해서는 남이 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지만 남의 회사를 위해서는 일할 동기가 적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엔론이 희대의 분식 회계로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도 전문경영인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급여를 더 받으려고 실적을 과대포장하면서 일어난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로 꼽힌다.

물가구조개선 TF는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정부와 공공기관 차량의 대리인 문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 저렴한 주유소를 지정해 주유티켓을 선구매해 거래하도록 하되, 주유의 편의를 위해 인근의 최저가 주유소 3개를 함께 선정하도록 지도해나갈 방침이다. 이 밖에 각급 기관의 실정에 맞는 `대리인 문제` 개선방안도 꾸준히 찾아가기로 했다.

정부는 8월 중에 중앙 행정기관과 각급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장관 명의의 협조 공문을 발송하고, 이런 방안을 내년부터는 정부와 공공기관 예산집행지침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운영 결과를 지켜본 뒤 민간 기업들로까지 이 같은 관행을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주재한 물가 관계장관회의에서 "값싼 주유소를 지정ㆍ거래하거나 주유 티켓을 선구매해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알뜰한 주유 관행을 정착시키고 유가 인하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이를 민간으로 확산시켜 주유소간 경쟁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