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창립 이래 역사상 최대 규모 IT 프로젝트’. 지난 1월 완료된 대한항공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는 이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400명에 가까운 인력이 동원된 데다 전사 ERP 시스템 구축 기간만 3년여가 소요됐다.
ERP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검토 작업은 업무 혁신의 필요성이 부각되던 2006년도에 시작됐다. 이듬해 9월 ERP 추진본부가 조직되고 세계 항공 산업의 새 역사를 쓸 ERP 프로젝트의 서막이 올랐다.
◇항공사 기준 세계 최대 범위 ERP 구현=ERP 추진본부는 2006년 프로세스 혁신 작업과 마스터 플랜 수립을 거쳐 2007년 9월 시스템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패키지 검토 작업부터 시작해 구축 작업을 총괄한 강성민 대한항공 ERP추진본부 상무는 “당시 ERP가 제조 산업에 많이 확산돼 있던 데 반해 항공 산업에서는 ERP 시스템이 보편화돼 있지 않고 항공사에서 중요한 업무 구현이 어려운 등 최적화된 패키지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오라클 ERP 패키지를 선정한 대한항공은 이를 기반으로 ‘항공업’에 맞는 ERP 개발을 본격화했다. 일반적으로 항공사들이 재무 영역 등 한정된 범위에 ERP를 도입하지만, 대한항공은 재무를 포함해 제조영역, 자재·시설관리, 수익관리까지 폭넓은 영역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대한항공이 ERP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수익관리’ 패키지는 상용 제품이 없었다. 이렇듯 필요한 시스템은 자체 개발을 해 연계하고 항공기 정비용 ERP 모듈 등은 기존 오라클의 패키지를 기반으로 공동 개발키로 했다. 강 상무는 “항공기에 기내식을 탑재 및 하기하는 시스템까지 포함 항공기 관리를 위한 모든 원가를 ERP로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범위로 보면 세계 항공기 업계 최대 규모”라고 소개했다.
부문별로는 운영이 가능했지만 시스템 전체적으로 최적화돼있지 않다는 것이 ERP 추진의 가장 큰 동기였다. 데이터 표준화가 안 돼 있다 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던 것이다. 결산작업에만 3주가 걸렸고, 데이터에 대한 적기 수집도 어려웠다.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에도 해당 비행기 수지가 적자인지 판별하려면 결산 마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 메인 프레임 환경에선 신기술 적용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익관리에 항공기 정비까지 똑똑하게 한 ERP=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재무, 자재, 시설, 항공우주 부문의 ERP 시스템은 2009년 1월 정식 가동했다. 이어 그해 11월에 수익관리 부문과 관리회계 부문 ERP를 가동했다.
수익관리와 정비부문 ERP 등은 대한항공 ERP 프로젝트만의 핵심적 차별화 요소다. 수익관리 시스템 개발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비행과 항공기에 소요되는 각종 원가가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이 정보들이 자체 개발한 수익관리 모듈로 연계되면서 항공편당 ‘수익’ 여부가 이륙 2시간 만에 파악되기 시작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수익 관리 개발을 하려다보니 마땅한 선 사례가 없어 시스템 개발자들도 애로를 토로했다. 정비 부문 ERP 패키지는 타 업종에 맞춰져있다 보니 항공 산업에 맞는 개발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첫 시도라 맞춤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라클 본사의 글로벌 R&D팀과 협업해 가면서 개발을 지속해 나갔다.
약 30년간 축적돼 온 수많은 데이터 이관도 관건이었다. 필요없는 데이터는 버리고, 새 ERP에 맞도록 다시 표준화하고 통합 시스템으로 담는 작업은 계속됐다.
이어 정비 부문에 대한 ERP 시스템 구축도 본격화돼 2011년 1월부터 공식 가동됐다. 강 상무는 “정비 업무의 양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면서 또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오라클과 협업을 통해 최적의 시스템 개발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부품 하나하나에 대한 정비가 철저히 이뤄져야 하고 관련 규제에도 적합할 수 있도록 항공기 정비를 위한 대단위 개발이 이뤄졌다.
◇경영의 새 기반 마련…CEO의 스폰서십도 큰 힘=ERP 구축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다양한 효과들이 도출되기 시작됐다. 가장 큰 효과는 단절됐던 비즈니스 간 프로세스가 하나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통합된 것이다. 수익을 계산할 수 있게 되니 화물 등 스케줄에 대한 신속한 변경과 대응도 가능해졌다.
조직간 정보 공유도 쉬워졌다. D+5 이내 결산이 이뤄지고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 올해만 3대를 들여오는 A380 기종은 비행기도 크고 원가도 많이 들지만 효율적으로 운영·영업할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다. 이에 완성된 ERP를 두고 ‘표준화된 전사 아키텍처를 완성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강 상무는 “여객의 경우에는 스케줄을 변동하기 어렵지만 화물의 경우에는 영업 정책과 가격에 대한 의사결정은 더 빨리할 수 있게 되면서 효율적 운영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후속 과제로 인사관리(HR) 쪽 모듈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ERP를 통해 쌓인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고도화된 분석 시스템을 통해 ERP 구축의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강 상무는 “실시간으로 수익 자료가 도출되니 다음 과제는 그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고 최적화하고 예측하고 대응하는 방법에 관한 것”아라고 말했다.
ERP 시스템을 통해 단순히 현상을 파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통해 다시 비즈니스를 최적화할 수 있는 시스템 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데이터 분석과 업무 효율화 연계를 위한 통합 조직에 대한 필요성도 절감하고 있다.
현재 활발히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신여객 시스템과의 표준화 및 통합 작업도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대규모 IT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대한항공의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전사적으로 IT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경영’의 중요성,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상무는 “ERP 시스템이 정비됐고 향후 신여객 시스템도 새롭게 구축되면 대한항공의 기반 시스템이 명실공히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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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ERP 추진 동기와 기대효과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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