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총장 chkim1202@gmail.com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HP의 PC 부문 분사, 애플의 스티브 잡스 퇴진 등 세계 IT 산업계에서 일어난 최근의 일들은 향후 세계 IT 산업 구도를 뒤바꿀 태풍의 핵이다. 이들 사건이 미칠 경제 산업적 영향에 대한 분석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도 소프트웨어(SW) 산업 육성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수준의 불확실 단계로 접어든 IT 산업을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 개발,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개시, 다이얼패드라는 인터넷전화 등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팟, 트위터나 페이스북, 스카이프보다 먼저 등장한 이들 국내 제품이나 서비스의 현재는 어떠한가.
분명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다. 그럼에도 이들 세계최초 제품과 서비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을 간과한 것일까. 바로 기술혁신 생태계다. 제품과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말들었지만 기술혁신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시장주도자(Market Leader)’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재산권을 통한 권리 보호와 글로벌 수요 창출은 기본이다. 여기에 많은 조력자와 추종자 확보가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글로벌 시장주도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애플은 기본적으로 폐쇄성을 추구해 온 회사다. 이로 인해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던 애플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이 주도한 개방형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몰렸었다.
1990년대 데스크톱 컴퓨터 시장은 수많은 부품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던 경연장이었고, 그 와중에 애플은 일부 분야 전문가들이나 마니아층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겪었다.
여전히 애플은 폐쇄적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는 분명 기존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르다. 애플은 수많은 조력자와 추종자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 모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의 IBM이나 현재의 애플, 구글과 같은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그들과 같이 성공적인 기술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과거 정보통신부와 같은 IT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화에 선제대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아이폰이 처음 국내에 도입될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휴대폰 산업은 금방이라도 망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점유율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요동치고 있는 IT 산업을 과거 패러다임만 가지고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IT 산업은 한 두 개 공급자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수많은 이해자들이 소통하는 생태계로 인식해야 하며, 정부 정책도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
변화는 두렵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 공룡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소멸하고, 새로운 기업이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앞에 찾아온 기회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