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한 통의 메일이 닌텐도 임직원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 10년 동안 닌텐도에는 거품이 잔뜩 끼었습니다. 그에 취해 돈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았습니까?”
메일에 들어 있는 도발적 질문이다. 보낸 사람은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세계 게임 팬들에게 꿈과 감동과 놀라움을 주기 위해 자유분방한 문화를 유지하던 닌텐도에 갑자기 비용 절감이라는 찬바람이 불었다.
◇고수익의 대명사에서 적자기업으로 전락=닌텐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수익 기업이다. 닌텐도는 2009년 매출 1조4400억엔에 영업이익 5300억엔이라는 경이적 실적을 냈다. 직원 1인당 매출은 10억엔에 육박, 도요타의 5배를 넘었다. 시가총액은 부동의 1위 NTT도코모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커졌다.
연이은 천문학적 이익으로 예금에만 약 8000억엔(11조1400억원)을 쌓아뒀다. 닌텐도의 올해 여름 보너스는 162만엔(약 2255만원)이다. 니혼게이자이 조사에서 3년 연속 선두를 지켰다. 한 미디로 닌텐도는 지금까지 비용 절감과는 무관한 회사였다.
태평성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닌텐도의 2분기 실적은 매출 939억엔에 영업적자 377억엔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 매출보다 심각한 항목은 영업이익이다. 지난 2004년 닌텐도가 분기별 실적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영업적자는 초유의 사태다.
닌텐도는 2011년 예상 실적 가이드라인도 크게 낮췄다. 당초 1100억엔이었던 예상 영업이익은 200억엔으로 조정했으며, 3년 연속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닌텐도 시가 총액은 최대치와 비교해 5분의 1로 떨어졌다.
◇날개 없는 추락의 원인은 폐쇄성=세상은 스마트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개방으로 나아가는데 닌텐도는 전용 게임기라는 프레임을 고집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는 휴대형 게임기를 외면했다.
어차피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데 닌텐도DS를 사기 위해 20만원이 넘는 돈을 선뜻 내기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폰에 게임이 설치되는데 닌텐도DS 게임을 사려고 매장에 발품을 팔기엔 너무 번거롭다.
닌텐도는 과거 폐쇄성으로 재미를 봤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양분하던 게임기 시장에서 슈퍼마리오를 앞세워 일약 삼국지 구도를 만들었다. 닌텐도는 특히 게임 개발사에 전폭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닌텐도 게임기용으로 팔려면 수만 장의 최소 발매 수량을 약속해야 했다. 그만큼 자사 게임기에 자긍심이 있었지만 개발사 입장에선 가혹한 조치였다.
지난 2009년 2월, 게임 업계 살아있는 전설인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개발본부장을 인터뷰했다. “애플이 닌텐도의 경쟁자라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야모토 본부장은 “애플이 훌륭한 회사지만 슈퍼마리오는 없지 않느냐”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이라는 자유 시장이 만들어졌다. 개발사는 굳이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 않아도 게임을 세계인에게 팔 수 있는 기회에 주목했다. 재미있는 게임이 무료로, 유료라 해도 단돈 몇 달러에 나오자 게임 팬들은 닌텐도DS를 놓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세상은 개방을 원한다=닌텐도는 여전히 게임 콘텐츠로 역전을 꿈꾼다. 니혼게이자이는 닌텐도 전략이 휴대형 게임기 신제품 가격을 내리고 ‘슈퍼마리오’ 등을 인기 게임 시리즈 계속 투입하는 방향이라고 내다봤다.
닌텐도는 이전에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신제품에 밀려 고전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으로 1억 4000만대 이상 팔린 닌텐도DS도 출시 초기엔 부진했지만 ‘두뇌 트레이닝’ 게임으로 단번에 만회했다.
고비를 잘 넘겨왔지만 닌텐도가 처한 현실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게임기가 플랫폼으로 가치 있던 시기가 아니다. 패러다임이 변했다. 스마트폰이 휴대형 게임기 자리를 대신하고, 유통은 인터넷이 오프라인 상점을 밀어냈다.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게임을 더 많은 사람이, 더 부담 없이 즐기는 콘텐츠로 바꾼 혁신의 주인공이 닌텐도지만 스마트폰 혁명 과정에선 구태의연했다.
스마트폰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가 소비자 선택을 기다린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혁신 대열에서 멀어진다. 닌텐도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스마트 혁명 시대 개방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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