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하나로 볼 때 어떻게 구획을 나누고, 어떤 기능을 모아 관리할 것이며, 어떤 기능은 지역에 맞게 특화시킬 것인가.’
해외 기업의 글로벌 경영을 목격한 컨설팅 기업은 국내 기업에 위와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대답은 한결같다. 최대한 큰 단위로 묶어 재무·물류 등 지원 기능은 ‘집중’하고, 가능한 세분화된 단위로 나눠 마케팅 등 시장 접점은 ‘특화’하는 것이다. 올해 삼성·LG·두산·롯데·한화·KT 등 주요 기업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 통합이 바로 지원 기능 시스템의 ‘집중’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은 글로벌 재무·회계·물류·구매 업무 등으로 통합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분산’과 ‘통합’, 기업 네트워킹의 역사=1990년대 후반 대다수 기업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 재무 등 지원 시스템까지도 국가별 분산 및 특화 전략을 구사해왔다. 각 나라의 지역적 특색을 최대한 반영한 조직과 특화된 의사결정 체계에 기반한 차별화된 정책이 글로벌 경영을 대변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가운데 많은 양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할 만한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중요한 변수는 IMF를 비롯한 거시 경제의 위기였다. 위기는 세계에 영향을 미쳤지만, 국가별로 분산된 시스템과 조직의 끊어진 사슬은 기업의 존망 자체를 위기로 몰았다.
‘확장’ 전략에는 지역 특화 전략이 유리했지만, ‘위기 극복’에는 본사를 위시한 강력한 의사결정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 지원할 IT가 필요했다. 기업들은 분산됐던 시스템들을 다시 모으고 ‘통합’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대용량 스토리지·서버 및 네트워크 기술도 덩달아 발전하면서 입김을 불어 넣었다.
◇통합 업무 시스템으로 단일 네트워크 기반 마련=2000년대 초반 노키아, 네슬레, P&G 등 글로벌 기업의 시스템 통합 이후 2000년대 후반 국내 기업의 통합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비롯해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시장의 주목받는 기업이 움직였다.
삼성전자가 2007년부터 구축하기 시작해 120여개 법인의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했다. 앞서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구축한 데 뒤이은 것으로 세계 최대 규모 글로벌싱글인스턴스(GSI) ERP 시스템으로 꼽힌다.
올해 이 모델은 삼성그룹 전 계열사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IT를 매개로 삼성전자의 글로벌 네트워킹 방법론을 계열사에 확산하겠다는 전략이다.
완제품 기업에 뒤이은 삼성·LG그룹의 주요 부품사들이 GSI ERP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한다. 삼성SDI, 삼성전기에 이어 삼성코닝정밀소재, 삼성정밀화학 등이 대표적이다. LG그룹에선 LG이노텍이 올 상반기 프로세스 개선에 착수해 내년부터 시스템 개발에 들어간다. 두산그룹도 두산인프라코어·두산 전자BG 등 전 계열사에, 롯데그룹도 유통·제조·서비스 계열사에 글로벌 ERP 시스템을 확산하고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