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은 이명박 정부 브랜드와 같은 정책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정부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기업현장 애로해소 방안을 소개하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맞춤형으로 현장 어려움을 풀어주는 정책들’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 적지않은 기업들은 “정부가 지원책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규제를 없애 달라”고 당부한다. 이유는 하나다. 기업 성장에 발목을 잡아서다. 해보겠다는 의욕을 꺾는다.
신생업체 사례다. 최근 정부 발주사업 공모에서 업력이 짧다는 이유로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회사가 있다. 회사 CEO는 “매출과 인력을 평가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업력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설립 이후 2년 동안 놀고 있으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기존에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사업을 펼치는 기업 대부분도 오픈돼 있지 않은 정부 규제정책에 골머리를 썩인다. 소관 부처가 어디고, 적용받는 제도·정책을 알기 힘들다. 한창 경쟁력을 높여야 할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게임업체인 컴투스 박지영 대표는 최근 “규제가 걷혀야 글로벌 마켓을 무대로 활동 중인 우리 회사의 다양한 활동이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규제에 따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경제규제비용 분석 내용은 규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짐작케 한다. 지난 2008년 조사 결과로, 우리 경제 규제비용이 국내총생산(GDP) 10%에 육박한다. 정확히 지난 2006년 GDP의 9.2%에 해당하는 78조1000억원이다. 전체 경제규제를 시장규제와 행정조사부담, 납세순응 등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다. 산업 전체로 볼 때 규제비용은 사업체당 평균 2436만원, 종사자 1인당 515만원, 임금총액의 7.3% 수준에 달한다.
국가 행정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정부 정책이 과감히 ‘오픈’돼야 한다. 과거 정책이 통제와 보호, 운영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자율과 경쟁, 혁신을 지향해야 한다. 규제중심에서 시장과 창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생기업 등 중소·벤처기업이 그들의 튀는 아이디어를 과감히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원(먹거리)을 창출해야 한다. 과거 통제와 보호 중심의 규제는 국가 경제에서는 이들 참신한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한계가 있다. 그 틀을 깨부숴야 과감한 혁신이 뒤따를 수 있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지원 정책보다 규제 품질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국가 행정의 대대적인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이미 세계는 규제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런 분위기를 촉발시켰다. 한 국가가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그곳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이 맘껏 능력을 발휘해야 해서다. 그들이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국가 발전과 연결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초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거나 낡고 중복되는 정부 규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 작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공중의 보건, 복지, 안전, 환경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경제성장과 혁신, 경쟁력 증진도 해야 한다는 배경을 들었다. 미국의 중소기업 규제개선 노력도 주목된다. 중소기업옹호실을 비롯해 옴부즈맨, 규제기관들이 규제 철폐에 앞장선다. 규제기관들은 10년마다 규제 존속과 폐지 여부를 검토한다. 일본도 원가절감 일환으로 공장을 해외에 세웠던 기업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도 물론이고 예외는 아니다.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와 관련 위원회에서 규제 완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무한경쟁에 놓여 있다. 어제의 기술로 오늘 승부가 힘든 촉각을 다투는 경쟁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규제가 장애로 작용한다면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실일 것이다.
기업인들이 “정부가 차라리 안 나섰으면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산업계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가 나서면서, 오히려 사업이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대신 열어야 한다. 정책을 큰 그림속에서 과감히 오픈하는 개혁만이 필요하다. 그래야 혁신 주도의 경제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최근 서울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의미 있는 발언을 남겼다. ‘여성’에 대한 유리장벽(Glass Wall)을 없애자는 제안이었다. 유리장벽은 암묵적인 차별과 편견을 뜻한다. 능력·자격을 갖췄음에도 여성·소수민족이란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되는 경우 등이다.
반 총장은 포천 500대 기업 중 여성 중역 숫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매출이 크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오픈의 힘이다. 막힌 벽을 과감히 허물은 결과다.
반 총장은 “타성을 과감하게 혁파하면 건전하게 발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오픈을 막는 제도와 규제를 없애는 순간, 국가와 그 속에서 뛰고 있는 기업은 분명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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