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룡 기업 IBM, 마이크로소프트 운용체계를 선택하다=1980년 공룡 컴퓨터기업인 IBM은 후에 IBM PC로 불리게 되는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착수한다. 애플이 공전의 히트작인 애플Ⅱ가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후속작을 내놨지만,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때 개발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IBM PC에서 돌아가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도록 결정한다.
IBM은 자사에도 유닉스 기반의 운용체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시하려는 제품에 맞는 외부 운영체제를 선택했다. 당시 시장의 많은 제품들은 타사 부품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IBM은 표준 기능을 제시하고 서로 다른 제조사간 부품이나 소프트웨어가 호환이 가능한 현재의 컴퓨터 시장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 같은 IBM의 개방형 정책은 수많은 제조사로 하여금 IBM PC와 호환되는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했다.
IBM은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베이직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 관련 제품들에 대해서만 교섭을 시작했다. 운용체계에 대해서도 8086용 CP/M을 마이크로소프트에 개발을 의뢰했다. 그러나 CP/M의 사용권이 없었던 빌 게이츠는 해당 기술을 보유한 디지털 리서치와의 교섭을 조언한다. 그러나 디지털 리서치와의 교섭은 불발로 끝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만의 운용체계 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목적으로 CP/M이 8086에 이식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독자적으로 86DOS를 개발하던 시애틀 컴퓨터시스템을 통째로 사들여 IBM PC용으로 수정하여 PC-DOS를 만들어 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기업 PC에 OEM으로 제공할 때에는 자사 상표인 MS-DOS란 이름을 사용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갯수만큼 판매하는 방법이 아닌, IBM PC 출하 댓수만큼 사용료를 받는 라이선스 계약이 이뤄지면서 향후 윈도우 개발까지 이르는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다.
◇ 리눅스의 탄생,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오픈소스까지=소스코드를 인터넷을 통해 무상으로 공개해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개량하고 재배포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라고 한다. 산업 초기 라이선스 유지 및 보수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지만, 현재는 집단 지성을 활용한 효과적 소프트웨어 및 다양한 응용 사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개방형 표준 지향△공급자 종속성 탈피 △저렴한 라이선싱 비용 △유연한 플랫폼 지원 및 신속한 업데이트 등이 가능하다.
컴퓨터 운용체계(OS) 시장에서 오픈소스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로 자리 잡은 것이 리눅스다. 현재는 개인 운용체계에서 서버, 구글 안드로이드에도 응용되는 리눅스는 핀란드의 컴퓨터공학과 학생이던 리누스 토발즈가 만들었다.
리누스 토발즈는 헬싱키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절 학교 수업중 교육용 유닉스(UNIX)인 미닉스(Minix)를 배우면서 보다 나은 미닉스를 만들어보기 위해 취미 삼아 운용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고가의 장비를 소유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대형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유닉스 소스 코드를 수정해 개인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개 운용체계(OS)로 개발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리눅스 0.01 버전’으로 명명했다. 여기에는 독점적 라이선스 정책에 반대하는 해커 리처드 스톨만이 일찍이 개발했던 프리 소프트웨어인 GNU(GNU`s Not UNIX)가 기반이 된다.
리누스는 리눅스의 소스코드를 공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만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내놓아 성능이 개선되고 있다. 리눅스 운용체계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공개된 코드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도 있다.
리눅스가 단순히 개인용 개발자들을 위해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리눅스는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닉스, 윈도를 능가하는 전 세계 서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운용체계로 자리 잡았다. 호환 가능한 컴퓨터 시장을 만들어낸 IBM은 2000년대부터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본격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리눅스 운용체계를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서버 등 핵심기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며 공룡기업 체질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 제록스 파크, GUI를 탄생시킨 R&D 연구센터의 모범=복사기 제조회사인 제록스는 개방형 혁신기업의 주요 사례로 제시된다. 당시 경쟁사가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지 않아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실패 사례를 보고 제록스는 새롭게 부상하는 컴퓨터 산업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당시 본사가 위치한 뉴욕이 아닌 스탠포드 대학 부근인 팔로 알토에 연구개발센터인 ‘팔로 알토 리서치 센터(Palo Alto Research Center, PARC)를 설립했다. 제록스는 2000년대에 들어 경영난을 문제로 본사를 현재 위치한 코네티컷주 스탠포드로 옮긴다.
당시 R&D센터인 PARC에서 수행하게 된 연구개발은 당장 회사의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이뤄진 복사기와 관련된 일부 연구는 기존의 고객들에게 신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반면 고객기반이 없었던 컴퓨터 산업은 성공하기 어려웠고, 대신 본사와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까닭에 다양한 실험적 연구가 이어진다. 결국 제록스에서 시작해 벤처캐피털의 도움을 받아 창업한 어도비(Adobe)를 비롯한 30여개 회사의 탄생이 이뤄졌다.
RARC는 본업인 레이저 프린팅 외에도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시대를 앞서나간 기술의 요람이었다. GUI는 제록스에서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인 알토 인터페이스로부터 유래됐는데 이는 윈도, 메뉴, 아이콘, 라디오단추, 체크 박스 그래픽요소를 차용했으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입력장치로 사용했다.
알토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품은 아니었지만 수천 개의 제품이 조립되어, 결과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 제록스의 연구소 PARC와 여러 대학교에 쓰였다. 이는 수십 년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특히 매킨토시와 최초의 썬 워크스테이션 설계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는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
김명희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