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패션, 요란한 화장, 파격적인 퍼포먼스.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양성애 성향 공개, 생고기 드레스, 신곡을 내놓을 때마다 기대되는 무대 연출까지 상식을 거부하는 레이디 가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의 행보가 일시적인 기행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레이디 가가는 마돈나의 뒤를 잇는 팝 아이콘, 트위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로 떠올랐다. 미국 대학에서는 그를 사회학과 연결하는 학문적 시도까지 생겼다.
상식을 파괴하는 순간 스타는 태어났고, 그 스타는 끊임없이 상식을 넘어서는 새로움으로 사람들을 환호하게 한다.
상식 파괴는 매력적인 단어지만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경영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상식 파괴로 감수해야 할 위험요인을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소비자 취향이 삽시간에 바뀌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기존 기업과 경영학이 고수하는 원칙을 깨는 것이 기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진단한다.
◇애플, 상식 파괴의 역사=애플은 상식 파괴로 시장을 연 대표 주자로 꼽힌다.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PC라면 천편일률적으로 검정색이거나 흰색이었던 시절 컬러풀한 ‘아이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아이맥의 상식을 깬 디자인은 비단 색깔뿐만이 아니었다. 본체도 없이 모니터 하나에 모든 기기를 집약해 뒀다. 모양 역시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을 선택했다. 투명한 케이스를 도입해 아무도 보고 싶어 할 것 같지 않은 PC 내부를 디자인 요소로 삼았다. 당시 ‘아이맥’을 디자인했던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맥은 컴퓨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의 자신감은 맞아떨어졌다. 당시 아이맥 구매자 40%가 디자인을 주요 구매 요인으로 꼽을 만큼 사람들은 디자인에 열광했고, IT제품을 구매하는 중요한 기준에 성능 외에도 디자인이 추가됐다. 이 제품이 위기의 애플을 수렁에서 건지는 작품이 된 것은 물론이다.
애플의 상식 파괴 전략은 아이튠스에서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애플이 아이튠스 스토어를 오픈할 당시 음악을 유료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애플은 고집스럽게 저작권자들을 설득해 디지털 유통 권리를 얻었고, 저작권자 요구대로 ‘디지털저작관리(DRM)’ 기술까지 적용해서 음원을 유통했다.
이용자들은 DRM이 적용된 음원이 호환성이 낮다는 불만을 제기했지만 낮은 가격과 아이팟과 연동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에 매료됐다. 불법 음원 다운로드가 팽배하던 시장에 아이튠스는 한줄기 ‘빛’이 됐다. 결국 아이튠스 스토어는 2008년 미국 최대 음악 소매점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애플의 이런 전략도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가 만든 상식에 갇히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존과 같은 경쟁기업은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DRM 프리 음원을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애플은 이런 시장 변화를 도외시했다. 결국 줄기찬 소비자 요구에 못 이겨 애플 역시 자신이 만든 상식을 배반하고 DRM 프리에 동참했다.
◇최초는 최고가 아니다=상식을 파괴하라고 해서 뭐든 ‘최초’로 시도해야 한다는 상식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김상훈 서울대 교수는 최근 저서 ‘상식 파괴의 경영트렌드 28’에서 선발자 우위가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며 민첩한 후발주자가 시장에서 성공한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다소 시장 지위를 위협받고 있지만 지난 20년간 PC 운용체계(OS)를 지배한 기업은 단연 마이크로소프트(MS)다. 하지만 PC OS를 최초로 만든 곳은 MS가 아니다. 최초로 PC OS를 만든 회사는 1970년대 게리 킬달이 만든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였다.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디지털 리서치는 독주를 했고 IBM과의 교섭도 거부했다. 최초였지만 더 이상 혁신을 시도하지 않았던 회사는 결국 MS에 시장을 내줬고 1991년 노벨사에 인수됐다.
OS뿐만 아니라 다른 IT 영역에서도 ‘최초 출시’보다는 ‘최초 전략’을 냉철히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무장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핫 이슈인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스마트폰 산업 구도를 이야기하면 블랙베리를 만든 리서치인모션(RIM)의 몰락과 아이폰을 만든 애플의 시장 선도, 한 발 늦었지만 갤럭시S 시리즈로 시장 제패를 꿈꾸는 삼성, 안드로이드OS로 선전 중인 HTC를 논한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곳도 스마트폰을 최초로 만든 곳은 없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만든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IT 솔루션 제공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IBM이다.
199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에 전시된 IBM과 벨사우스의 합작품 ‘사이먼(Simon)’이 세계 최초 스마트폰이다. 1993년 상용화된 이 제품은 당시 899달러였으며 미국 내에서 190대가 팔렸다. 주소록, 세계시각, 계산기, 메모장, 이메일, 팩스, 오락 등 부가 기능에 터치스크린을 사용해 손가락으로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것까지 스마트폰의 원조라 할 만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제품을 기억하지 않고 최초 스마트폰을 내놓은 IBM은 IT 솔루션 프로바이더 역할을 하고 있다.
‘최초’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원하는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는 예다. 행여 지금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최초가 아니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신발장사 ‘자포스’, 경영학의 ‘상식’을 바꾸다=지난해 9월 아마존이 온라인 신발 쇼핑업체 자포스를 인수했을 때 사람들은 그 인수가에 놀랐다. 자포스의 인수가는 12억달러(1조2700억원)로 아마존이 역대 인수한 기업 중 최고가였다. 자포스가 아무리 잘나가는 온라인 쇼핑업체였지만 이만한 기업가치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은 “아마존이 인수한 것은 자포스의 독특한 기업문화”라는 해답을 내놨다.
자포스의 기업문화와 경영방식은 그야말로 상식 파괴적이다. 우선 전체 직원 1500명의 27%인 400명이 콜센터 직원이다. 기업 대부분이 상품 기획과 판매를 중심에 두는 반면에 자포스는 고객 응대를 핵심에 두는 것부터 남다르다.
콜센터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하지만 자포스는 콜센터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상품이 아니라 ‘행복’을 세상에 배달하겠다는 사명을 실천하려는 의지라고 해도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콜센터 직원의 응답내용을 들으면 더 경악할지도 모른다. 어떤 직원은 7시간 넘게 한 고객만 붙잡고 통화하는가 하면 다른 직원은 경쟁사 제품을 안내해준다. 한 술 더 떠 피자집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고객에게 전화번호를 검색해 찾아주기도 한다. 고객응대 매뉴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만족을 위해서라면 회사 규칙을 어기는 것쯤은 눈감아 준다.
과연 이런 회사가 장사를 제대로 할까 싶지만 자포스 고객 재구매율은 75%에 이르고 아마존에 인수되기 직전 자포스 매출은 10억달러(11조원)를 기록했다.
‘신발을 온라인에서 파는 사업은 안 될 것’이라는 시장 예측과 불황으로 콜센터 직원을 감축하는 흐름과 반대로 콜센터 역할을 더 강조한 자포스는 가장 대표적인 상식파괴 경영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자포스가 상식을 깨는 부분은 이것만이 아니다. 신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자포스는 IT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웹에서 보여주기 위해 사이트와 시스템을 오픈소스SW로 구축했다. 이 덕분에 자포스 사이트는 아마존, 베스트바이를 제치고 소비자가 클릭했을 때 해당 정보를 가장 빨리 제공하는 사이트로 꼽히기도 했다.
아마존이 산 것은 “하루 24시간 중 10%만이라도 직원과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한다”는 토니 셰이 CEO의 상식 파괴적인 경영철학이 가져올 혁신과 변화일지도 모른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