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컨설팅 기업들 "한국 R&D, 선택적 `개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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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원천 기술 개발에만 100년 이상을 투자한 회사?’

 이런 회사가 세상에 있다. 바로 독일의 머크(Merck)다. 액정 개발에만 100년 이상을 투자한 이 회사의 원천기술은 오늘날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샤프 등 모든 TV·모니터 업체들이 LCD를 탑재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했다. 한 기업의 ‘뚝심’ 투자가 세계 전자 제품의 혁신을 앞당긴 셈이다.

 이 같은 장기적 투자가 혁신의 모델일까? 올해 애플과 삼성의 특허 소송전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R&D 아이콘은 ‘혁신’으로 기울었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서 탈피해 탈추격형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부상했다.

 전자신문 창간 29주년을 기념해 한국IBM GBS, 삼일PWC, 언스트앤영, 액센츄어, 삼정KPMG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에게 R&D에 있어 △외부 자원의 흡수 △내부 자원의 소통 △장기적 안목 등 3가지를 갖추라고 조언했다.

 ◇장기적 투자 필수…‘지나친 개방’은 위험=IBM GBS는 ‘인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사의 사례를 들어 IBM은 급할 때 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IBM GBS 관계자는 “만약 왓슨이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브라이스를 채용하지 않았다면, 혹은 이 두 사람이 R&D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다면, 오늘날의 IBM은 없었을 것”이라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장기적 투자 없이 눈앞의 연구에 목메다 보면 기업의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충고다. 결국 R&D를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IBM을 100년 장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설명이다.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이 기업 내·외 자원의 소통이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IBM GBS 관계자는 “최근 R&D는 기업과 정부, 학교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간 협업의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오픈소스와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발전이 거듭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는 각종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연구개발을 예전과 달리 ‘통합’해서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정KPMG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삼정KPMG 관계자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NIH(not invented syndrome, 자신의 것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외부의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상)을 없애고 타 산업의 우수 사례를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삼일PWC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무조건적인 개방을 경계했다.

 국내 기업들 즉 제조·중공업·자동차등 제조를 근간으로 하는 주요 기업들은 여전히 상당부분의 노하우와 오랜 기간의 투자와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오픈 이노베이션’의 한계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반도체 및 LCD, 조선과 자동차 등 세계 선두를 다투는 제조 기술은 조금의 유출에도 실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삼일PWC 관계자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빠르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제품에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이점이 있어 업종과 제품, 시장의 변화속도, 제품수명주기(Product Life Cycle)에 맞는 연구개발 전략이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R&D도 전략적 거점화…우수 인재 관리도 중요=언스트앤영은 R&D 전략도 전략적 거점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R&D 활동의 전략적 거점을 분산 배치하는 등 ‘다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언스트앤영 관계자는 “R&D 활동의 전략 거점을 주요 시장에 분산 배치하는 식의 노력을 통해 각 시장에 맞게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특정 시장을 염두하고 개발한 제품은 다른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 화장품을 들었다. 실제 한국인이 선호하는 화장품과 중국인 좋아하는 화장품은 다른 특성을 띄고 있다. 국내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에 맞는 화장품 개발을 통해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액센츄어는 지금의 R&D 추세가 ‘선도자의 축제’라는 점을 명시했다. 아이폰으로 혁신을 이끈 애플이 대표적 사례다. 바로 선도자가 혁신으로 인해 창출된 가치의 대부분을 점유한다는 경고인 것이다. 두 번째 주안점으로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선(先)투자가 동반되는 반면, 개발된 기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평준화된 기술로 변모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액센츄어는 이 같은 최근의 추세를 극복할 3가지 방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고객의 요구와 산업 특성을 고려한 명확한 기술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쉬운 말 같지만 실제 아직 많은 국내 기업의 R&D 전략이 주먹구구식이다. 액센츄어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이 경영 전략에는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명확한 기술전략을 수립하고 적극적 투자를 이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잠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술 전략의 수립 및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기술 지능화(Intelligence)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우수 R&D 인재를 확보·유지·관리함은 물론이고 지적 재산권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개발된 기술이 빠르게 시장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하고, 기술 투자에 대한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쟁자와의 적극적인 협력도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이 제시한 주요 R&D 전략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