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은 바쁘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들 중에 과학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가 있다. 또 과학자의 꿈을 가슴에 새긴 학생들도 있다. 어떻게 과학을 소개하고 가르쳐 이들을 과학자로 육성할 것인가.
타 분야에 비해 과학은 창의교육이 절실하다. 창의교육의 골자는 체험으로 정리된다. 과학은 책으로만 가르치기에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직접 만지고, 해부하고, 조립하고, 시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창의교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영동 지역 과학 인재양성 요람이 관심을 모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이 바로 그곳이다. 천연물, 환경 등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특화분야 연구 수행을 위해 설립된 강릉 분원이 지역 학생들에게 실험실 문을 활짝 열었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지역 학생들이 박사급 연구원과 함께 생생한 실험을 진행하는 세 곳의 현장을 찾았다.
◇예비과학자의 체험교육(인턴십 프로그램)
석장환(강릉고 2)군은 올해 뜻 깊은 여름방학을 보냈다. 비록 2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꿈꿔오던 과학자가 된 듯 한 기분이다.
석 군은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교과서에서 벗어난 심도 있는 강의와 고가의 연구 장비를 직접 다뤄볼 수 있었다”며 “과학자의 꿈을 상기시키며 더 확고한 목표를 가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석군은 KIST강릉분원이 마련한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의 학생 중 한명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진로를 선택하기 이전 학생들에게 연구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키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민족사관고, 강릉고, 명륜고, 경포고, 강릉여고, 강일여고 등 지역 고등학생 1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2주 동안 4개의 연구실에 배치돼 2주 동안 연수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학생들이 직접 연구원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강구인 강릉분원 실장은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연구 장비와 시설을 개방하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연구팀의 일원으로 연구를 수행토록 한다”며 “학생들은 박사급 연구원들과 연구에 동참하고 스스로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인턴십’이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학교에서 나름 과학 분야에 소질 있고 선발된 학생들이지만 막상 실제 실험실에 들어서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한 연구원은 “학생들이 책으로만 보던 실험기구를 가지고 색소분리나, 해부와 같은 낯선 실험을 수행하기 어려워한다”며 “그렇다고 연구원들은 일일이 지시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의 취지를 이해하고 자신이 맞은 분야를 처리할 수 있도록 조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고등학생과 함께 대학생에 대한 인턴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강릉원주대 학생 8명은 한 달 동안 분원 연구실에서 천연의약, 기능성천연물, 연경연구팀에 나뉘어 소속돼 연구를 진행했다.
이영빈 씨는 “맡은 재료를 메탄올에 넣어 추출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며 “실험에 몰두하다 보니 하루 4시간 기준이던 시간이 6시간, 혹은 8시간으로 늘어나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추출 작업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정이지만 학생들은 과정 기간 동안은 학생이 아니라 연구자 신분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진다.
이다혜 양은 한약재를 가지고 메탄올 추출, 농축, 분획 등 정제과정들을 배우고 실험했다.
이 양은 “천연물로 만들어진 영양제나 의약품 하나가 탄생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석박사 과정의 외국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도 뜻 깊었다”고 말했다.
분원 관계자는 “영동 지역에는 과학관이 없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체험하고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비 과학자에게 실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이 정말 어떤 것인지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과학자 양성소(꿈나무 과학교실)
“1, 2조 가운 입으세요!”라는 인솔 연구원의 지시에 초등학생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난다. 학생들은 가운을 과학자의 상징을 여긴다. 실험 도중 약물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것도 그렇지만 희색 옷 자체가 과학자의 신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운을 입는 순간 어린 학생들은 곧바로 과학자가 된 듯 한 기분이다.
한솔초등학교 5학년 변우영 학생 팀이 찾은 곳은 실험실 4층이다. 이곳에는 동물해부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항암연구소가 있다.
변 군은 “학교에서 해부하는 기회가 없어 친구들과 해부를 해보자고 연구원께 부탁 드렸다”며 “쥐를 마취하고 해부하는 과정에 참여해보니 심장과 뇌 등 놀랍고 신기한 것들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군을 비롯한 강릉지역 9개 초등학교 학생 30여명이 참여 중인 이 프로그램은 ‘꿈나무 과학교실’이다. 방학을 이용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과학과 재능에 관심이 있는 강릉지역 초등학생이 초청돼 직접 실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학생들은 연구실 연구원과 함께 해부와 식물 색소분리 등 작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안홍열 연구원은 “참여 학생 모두가 과학에 상당한 재능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교과서로만 공부하던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어떻게 도구를 다루고 실험을 진행하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때문에 학생들이 책을 통해 배운 과학지식을 실제 실험과 연계하는 것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연구원과의 대화의 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미래 모습을 그려갈 수 있는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과학자의 꿈을 키운다(사이언스 캠프)
사이언스캠프는 초등학생들의 과학지식을 넓히는 동시에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코스다. 평창과 강릉지역 초등학생 90여명이 2박 3일간 일정으로 체험활동을 벌인다.
캠프에서 학생들은 화학 실험, 곤충 왕국, 식물의 세계, 신비로운 미생물을 주제로 분원의 연구원들과 함께 다양한 실험에 참여한다.
이희주 연구원은 “과학 원리를 배우는 탐구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KIST의 연구현장과 과학체험관을 둘러보고 과학자 강연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학을 좋아하게 되고 과학자의 꿈을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분원 본관 3층에 설치된 과학체험관 내 천연물 연구, 체험과 흥미, 기초과학원리, 실습과 탐구교실 등 4개 구역이 개방된다. 천연물 연구존에서는 천연물 신약의 탄생과정과 함께 암세포의 3차원 입체 단백질 구조를 관찰한다. 또 숲속 방에선 종이보다 얇은 필름 스피커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감성체험도 할 수 있다. 핀스크린, 롤링볼, 마법사의 돌 등 모형을 작동하거나 만지면서 과학에 대한 재미를 키우는 다양한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분원 측은 “KIST가 지역 어린이들이 과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는 연구소가 되도록 앞으로도 체험 콘텐츠를 계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IST강릉분원=정부의 지방과학기술 혁신정책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의 특화산업 창출을 위한 핵심기술 지원을 목적으로 지난 2003년 설립됐다. 80명의 연구 인력이 상주하며 LC-NMR 500MHz 등 200여종의 장비로 천연물의약품, 천연물식품, 환경정화 분야를 연구 중이다. 2015년까지 연구 인력을 150명까지 확충, 안정적 연구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연구와 함께 지역 인재육성과 과학문화 확산 등 지역 기여에도 힘쓰고 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