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듣는다

[창간특집]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듣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벌써 4년이 흘렀다. 지금 정권이 들어서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은 부처를 꼽으라면 ‘방송통신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다. 독임제에 익숙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위원회 체제는 낯설뿐 아니라 방송과 통신을 합친다는 발상도 독특했기 때문이다. 설립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방통위는 2008년 2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대신에 1994년 설립해 IT강국의 위상을 높였던 정보통신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출범했다는 방통위의 지난 항로는 명분만큼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방·통 융합과 이에 따른 이종산업 간 협력과 발전을 위해 방송위원회와 정통부를 합치고 산업 기능별로 지식경제부·행전안전부·문화부로 진흥정책과 법안을 분산시켰지만 부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통신은 죽었고 방송만 남아 정치 부처로 전락했다는 ‘조직개편 실패론’까지 거론됐다.

 온갖 역풍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 바로 1기부터 정책 수장을 맡았던 최시중 위원장이다. 1기 동안의 워밍업을 끝낸 최 위원장은 2011년 3월 새로운 2기가 출범하면서 당시 “방통위를 국민에게 사랑받고 역동적으로 일하는 조직으로 키우겠다”는 일성을 밝힌 바 있다.

 ‘2기 최시중 방통호’가 닻을 올린 지도 6개월이 지났다. 최 위원장은 “물적 자원이 풍요롭지 못한 우리나라는 든든한 산업 기반으로 IT가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신념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부처 개편과 관련해서는 “지금 조직으로는 새로운 기술과 시장 요구를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다음 정권에서는 부처의 위상을 높이든 아니면 아주 새로운 조직을 만들든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내심 성과도 내비쳤다. 방송과 통신 융합을 위한 기틀을 잡고 산업으로 소홀했던 방송의 위상을 높인 점을 최대 공적으로 꼽았다. 자칫 뒷말이 무성할 뻔했던 종합편성채널 사업권 선정, 첫 주파수 경매제 등 굵직한 사안을 별 잡음 없이 처리했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 ‘안철수 신드롬’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반성할 부분이 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달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미국 출장길에 오른 최시중 위원장과 동행하면서 기자와 혹은 각계 전문가를 만나 나누었던 화두를 중심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씨앗론’ 차원에서 접근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를 한 번 더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경쟁력의 근간인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은 1980년대 뿌린 씨앗의 열매다. 20년이 지나면 한계가 있을 것이다. 1970~80년대 뿌린 씨앗은 이미 먹을거리가 된 상황에서 앞으로 30년 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후손에게 물려줄 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점이다. 미래 먹을거리 중 하나가 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정보통신이다. 국가에서 산업 단위로 볼 때 ICT 분야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콘텐츠는 미래 신성장동력의 핵심이라고들 한다.

 ▲1970년대 현대자동차에서 포니자동차가 나왔을 때 세상이 웃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중요한 수출 동력이다. 콘텐츠도 그런 역할을 할 씨앗이다. 3차원(D)을 포함한 콘텐츠 역시 조금만 분발하면 도약할 수 있다. 포니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할 때와 다르다. 1957년 터키에 우리 대사관이 들어섰을 때 당시 정일권 대사가 터키 세계박람회에 출품할 한국 전시품목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물었더니 대통령 전문이 고무신이나 재떨이를 전시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이랬던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우뚝 섰다. 내년 우리나라에서 여수박람회를 열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능력 문제이고 자질 문제라고 본다.

 -방통위 개편,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고 아직은 이라는 말도 있다.

 ▲만장일치 위주의 위원회 체제는 장단점이 있다. 어느 한쪽의 독단을 방지하고 정책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정책 효율과 산업 지원 등에서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차기 정부 개편에서는 이를 감안해 새로운 정부 형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IT컨트롤타워로 갈지, 지금 조직을 보완하는 형태로 갈지 다양한 변수를 놓고 심도 깊은 논의가 있으리라고 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같이 호흡을 맞추며 올바른 대안을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KISDI 신임 원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알고 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현명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종편사업자 선정, 잡음 없이 끝냈다고 보나.

 ▲자칫 정치적 문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컸지만 큰 마찰 없이 무사히 마무리했다. 선정 이후 일부 잡음이 있지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만장일치가 전제인 위원회 체제 덕분이다. 새로운 사업자에는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선정만 해놓고 방치한다면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다. 종편 선정 후 다소 미진했던 부분을 채워 나가겠다.

 -첫 주파수 경매제, 어떻게 평가하나.

 ▲투명하고 효율적인 주파수 할당을 위해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해 올해 첫 시행했다. 일부에서는 과열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안팎의 여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주파수 가격도 이전 할당제를 시행할 때와 비교해 높지 않았다. 이미 주파수와 관련해서는 경매로 제도가 확정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첫 경매제에서 나온 과제 등을 중심으로 이후 경매제에서는 보다 보완해 시행할 계획이다.

 -주파수 확보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한다.

 ▲‘모바일 광개토 플랜’으로 해결하겠다. 주파수 확보는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시급한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2기 방통위는 부족한 주파수 대역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다. ‘모바일 광개토 플랜’으로 통신 3사가 보유한 주파수(270㎒폭)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최대 668㎒폭의 신규 주파수를 2020년까지 발굴해 나가겠다. 디지털TV 전환에 따른 700㎒ 유휴 대역은 아직 사용처를 확정하지 않았다. 방송과 통신, 각계 전문가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 방안을 마련하겠다.

 -디지털 전환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보나.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계획대로라면 2012년 12월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작업이 다소 미진하다는 여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우리보다 2년이나 빨리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한 미국도 수신기 보급률이 낮아 2009년 2월에서 4개월 정도 늦춰졌다. 올해부터 방통위 주도로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작업에 나서는 이상 별 문제없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앞으로 방통위 정책 기조는.

 ▲‘함께 누리는 스마트 코리아’다. 2기 방통위의 큰 틀이자 슬로건이다. 세부 핵심과제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허브 한국 실현, 스마트 생태계 조성과 신산업 창출, 디지털 선진 방송 구현, 방송통신 이용자 복지 강화다. 앞으로 2012년까지 지금보다 10배 빠른 기가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2020년까지는 100배 빠른 10Gbps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클라우드·사물인터넷·근접통신·스마트TV·t커머스·위치기반·3D 방송 등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7대 스마트 서비스가 활성화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방송통신에 관한 한 선진국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방통위원장이 된 이후 방문한 나라가 30여곳이 넘는다. ICT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우리나라가 세계 정상에 접근해 있다. 종합적으로 비교하고 배울 곳은 미국이라고 판단해 출장을 결정했다. 조선 말기 선조들이 신사유람단을 만들어 미국을 견학하고 현대화 계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일본도 메이지유신 앞두고 미국을 방문했다. ICT 분야에서 미국의 혁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에 관한 정부 역할론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산업을 육성하는데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열정이 있어야 한다. 정부만 바라본다면 열정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정부 지원 보다 더 중요한 게 강렬한 의지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95년께 아바타를 구상해 15년간 제작했다고 한다. 15년간 미쳐 있었던 것이다. 누구 지원을 바라거나 다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제대로 미쳤으면 한다. 이번에 주파수를 경매해 1조원정도 벌었다. 연말, 내년에 주파수를 팔면 여유도 생길 것이다. 3D와 클라우드컴퓨팅에 대해서는 예산이나 기금 지원을 하려고 한다. IT 분야는 과거를 생각하면 일 못한다. 규제는 계속 개선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산업계에 있는 종사자들이 제대로 미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미국 방문 ‘워싱턴에서 LA까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달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일정으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연방통신위원회(FCC) 등 방송통신 주무 부처와 미래 방송통신 정책 방향과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하자는 목적이었다. 아울러 글로벌 IT기업을 찾아 최신 기술 흐름과 동향을 살펴봤다. 워싱턴DC·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4개 도시를 돌면서 글로벌기업을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현지시각으로 출장 이틀째인 6일 최 위원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FCC와 통신정보관리청(NTIA) 방문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이 자리에서 공공 주파수 관리정책과 디지털 전환 정책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위원장은 주파수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상업용과 공공용으로 함께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동일 주파수를 여러 사업자가 공유하는 정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어 FCC 줄리우스 제나카우스 위원장과 양자회담을 열었다. 지난 10월 ITU 전권회의 이후 1년 만에 이루어진 양자회담에서 망 중립성, 초고속인터넷 보급정책 등 정책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최 위원장은 통신사업자연합회(KTOA)와 미국 통신협회(CTIA)끼리 이루어진 제휴식에도 참여했다. 7일에는 제일기획 미주법인장 브리핑을 시작으로 타임워너, 벨연구소, 세계적인 광고회사 제니스 옵티미디어를 연이어 찾았다.

 8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최 위원장은 첫 일정으로 인터넷기업 구글을 방문해 경영 철학과 미래 서비스 전략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곧바로 이베이를 방문한 위원장은 인터넷 전자상거래 최신 동향과 개인정보보호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로스앤젤레스에서 최 위원장은 드림웍스를 방문해 제프리 카젠버그 CEO와 존 바터 부사장을 연이어 만나고 애니메이션의 경영전략과 3D 발전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드림웍스에서 활약하는 여인영· 전용덕 감독 등 한국 제작자를 만나 격려하고 국내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월트디즈니 앤디 버드 회장과 글로벌 미디어기업으로서 경영 전략과 미디어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이에 앞서 위원장은 현지에서 주요 3D콘텐츠기업 CEO가 모인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신성장 분야로 3D산업 중요성을 역설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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