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전 피해기업 레이트론 가보니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일도 힘들지만 폐기하는 것도 일이다. 레이트론 직원들이 정전으로 불량품이 된 광반도체를 폐기하고 있다.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일도 힘들지만 폐기하는 것도 일이다. 레이트론 직원들이 정전으로 불량품이 된 광반도체를 폐기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문지동 벤처협동화단지에 위치한 레이트론. 건물 1층에 마련된 클린룸에 들어가보니 한 쪽에서 제품을 폐기하는 직원의 손길이 분주하다. 조그만 박스에는 쓸모없게 된 광반도체가 빼곡히 담겨 있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정전에 따른 상처가 회사 곳곳에서 드러났다. 회사 표면상 평온해 보이지만, 속앓이가 이만저만 아니다. 광반도체 전문 회사인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LED와 적외선을 이용한 센서류다.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알려면 피해 상황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고객사에 납품해야 할 물량이 밀려 있어 아직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불량 제품과 피해 규모를 파악해 조치할 계획입니다.”

 이 회사 이현영 상무는 지난 15일 정전만 생각하면 진땀이 흐른다고 했다. 정전으로 인해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전기가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순간 정전인줄 알았다. 하지만, 정전 시간은 오후 5시쯤 시작돼 6시까지 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제품 품질 불량이다. 반도체는 다른 어떤 제품보다 엄격한 신뢰성을 요구한다. 생산라인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제품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노호섭 생산부장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장치인 큐어 오븐이 작동을 멈췄다”며 “오븐은 LED 조명의 색감과 밝기를 좌우하는 형광체를 액체에서 고체로 구워주는 역할을 하는데 전원이 꺼져 제품 신뢰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고가의 핵심 소재도 이번 정전 사태를 피해가지 못했다. 영하25도로 유지돼야 하는 전도성 에폭시는 냉동고 전원이 꺼져 물성이 변해버렸다.

 정확한 집계는 내봐야겠지만, 하루 생산량의 30%(100만개)가 정전 피해를 본 것으로 자체 파악했다. 피해규모도 적지 않다. 전체 피해 규모만 7000만~8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벤처기업이 감당하기에 적지 않은 규모다.

 노 부장은 “한전이 몇 시간 전이라도 미리 정전 계획을 발표했더라면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반도체는 생산 전 단계에 걸쳐 이력 관리가 철저히 이뤄진다”며 “피해규모가 크지만, 조만간 품질검사 등을 통해 불량제품은 즉각 폐기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

레이트론 직원들이 정전으로 불량품이 된 광반도체를 폐기하고 있다.
레이트론 직원들이 정전으로 불량품이 된 광반도체를 폐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