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의 전전긍긍】官이 박하면 피해는 백성에게 돌아간다.

 “모든 민간의 물품을 사들일 때 관에서 정한 값이 지나치게 헐하면 마땅히 시가대로 사들여야 한다(凡買民物 其官式太輕者 宜以時直取之).”

 다산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 제2장 율기육조(律己六條) 제2조 청심(淸心)편에 나온 수령된 자의 지침을 표현한 내용이다.

 정품 사용에 솔선수범해야 할 중앙 정부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의 불법복제 SW 사용이 심각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 ‘2010년도 공공부문 SW 사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기관에서는 SW 불법복제율이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742개 공공기관 가운데 중앙정부기관 22곳, 특별지방행정기관 28곳, 지방자치단체 104곳, 공공기관 49곳 등 총 203개 기관에서 불법 SW를 사용했다. 이들 기관이 불법SW 사용에 따른 피해액은 140억원에 달했다.

 금액별로 보면 광명시청이 2304건으로 피해금액이 22억4600만여원이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553건 12억9600만여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서울 중구청, 강서구청, 인천광역시청, 국방과학연구소, 청도군청, 고령군청, 금천구청이 10위 안에 들어갔다. 지자체가 특히 심하다.

 SW 불법복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SW 온라인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액은 3026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피해액이 669억원, 2007년 1043억원, 2008년 228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다 지난해 1141억원으로 잠시 줄어드는가 했더니 지난해 3026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장 피해가 많았던 SW는 윈도·한글·오피스 순이었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불법복제 SW를 아무 죄의식 없이 사용하는 것은 우선 SW를 돈주고 사서 써야 한다는 개념의 부재다. 다음으로는 사무용 예산 그 가운데서도 SW 예산 부족 때문이다.

 불법복제 SW 사용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전한 세트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인프라인 SW산업 발전을 막는다는 점이다. 우리 휴대폰 산업이 지난해 위기를 맞았던 아이폰 열풍은 결국 단말기 문제가 아니라 SW인 애플리케이션 부재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나라 SW업체들은 고사 일보 직전이다. 업체가 영세하다 보니 저임금으로 인한 잦은 인력 이동으로 체계적이 개발이 안 된다. SW 유지보수 비용은 현실을 외면한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외산 SW 선호로 국산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이러니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SW가 나올 리 만무하다.

 설상가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에서 불법복제 SW 사용이 만연하니 그야말로 SW 업계는 사면초가다. 정부의 지원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운다면서 지난해부터 3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던 월드베스455트소프트웨어(WBS) 사업 예산이 2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주관부처인 지경부 관계자는 “애초에 청와대에서 급작스럽게 마련된 사업이라 예산 당국과의 사업비 사전 조율이 원만하지 못했다. 추진주체가 모호해진 점도 예산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궁색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 SW산업 발전은 요원하다.

 목민심서는 말한다. 관에서 내주는 값이 박하면 아전이 고통을 느끼고 아전이 고통을 느끼게 되면 백성에게 값을 깎게 마련이니, 결국 손해는 아래 백성에게로 돌아간다고.

 공공기관에서 무심히 사용하는 불법복제 SW가 기관의 비용 절감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SW업체의 기를 꺾고 나아가 IT산업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승모기자 sm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