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설비를 정비할 정도로 여유 있는 마당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력거래소에 문의해 보세요.”
15일 정전 당시 한국전력 사내 분위기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외침은 그 당시 정전에 대한 정보공유가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에 같은 시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한전’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몇몇 방송에서 ‘전력과부하에 따른 정전사태’ 보도가 속보로 올라왔다. 정전사태로 피해를 본 사람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포털사이트·문자메시지를 통해 관련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국민은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력서비스는 구시대에 머물고 있었다. 통신사가 4세대 이동통신에 열을 올리고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IT강국 코리아에서 정전사태 상황 보고를 위해 90년대 방식을 사용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IT를 융합한 새로운 전력서비스인 스마트그리드를 구현하겠다는 와중에 대출회사·대리운전회사가 일일행사처럼 쓰고 있는 대국민 홍보채널을 우리 정부는 정전사태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비상상황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전파’다. 상황전파가 잘돼야 피해와 착오를 줄이고 빠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군 화생방 훈련 시 방독면 착용 후 ‘가스, 가스, 가스’를 외치는 것과 같다. 이번 정전사태는 방독면도 제대로 못 썼고 ‘가스’도 외치지 않았다. 덕분에 국민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고장 난 신호등 아래서 헤매야 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3시간만 먼저 상황을 알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 강국의 훌륭한 상황전파 채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활용하지 못한 게 아쉬운 이유다.
이웃나라 일본은 도심을 걷다보면 디지털 광고판을 통해 그날의 전력사용 예상과 현재 전력예비율 등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전력피크 때 그날의 뉴스를 통해서만 전력사용량을 접할 뿐이다. ‘비온 뒤에 땅 굳는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전력위기 시스템을 21세기 모델로 재설계해야 한다. 혹자는 정부 대책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말한다. 외양간 제대로 고쳐서 다음 외양간은 탈나지 않게 해야겠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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