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혁신의 길, 총장에게 듣는다]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대학혁신의 길, 총장에게 듣는다]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54)은 일반인에게 방송 프로그램 속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그는 총장이 되기 전 KBS 건강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식품영양학 지식을 정확하면서도 쉽고 친절하게 전달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시청자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대학 강의도, 총장 업무도 추진하고 있지 않을까. 2008년 9월 총장이 된 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비전과 성과, 제자 겸 후배에 대한 애정을 들어봤다.

 

 -이공계열 기피 현상에 대한 생각은.

 ▲2010년 OECD에서 발표한 국제 학생평가 보고서를 보면 한국 학생의 과학 흥미도가 57개 나라 중 55위를 기록했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그만큼 과학기술은 어렵고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어린 학생의 과학 흥미도도 매년 급감하고 있다. 당연히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 진학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교육자로 항상 강조하는 게 기본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나라 장래를 결정하는 과학기술의 근간이 될 이공계열을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상은 매우 걱정스럽다. 일본이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돈이 우리나라의 다섯 배다. 중국의 과학기술 인력은 우리나라 총인구와 맞먹을 정도다. 창의적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과 과학 분야 연구 성과와 향후 투자 계획은.

 ▲숙명여대가 국내 최초로 전 교정에 무선인터넷망을 구축한 게 1998년이다. 그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가 아태지역 여성정보화 주관대학으로 숙명여대를 선정했다. 덕분에 정보화 유공기관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IT 부문에서 숙명여대가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기초를 잘 닦아 세계 최초로 모바일캠퍼스를 구축(2002년)하고 국내 최초 원격대학원 설립(2003년)도 가능했다.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오픈형 지식공유 플랫폼인 SNOW(Sookmyung Network for Open World)는 정보 양극화, 지식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세계 유명 지식인과 하버드·스탠퍼드대학 강의를 한글 자막으로 볼 수 있다는 건 학습시스템의 진일보기도 하지만 지식을 나눈다는 점에서 생각의 진일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러한 정보통신기술 부문의 강점을 계속 이어가겠다.

 숙명여대가 또 강점을 가진 분야가 생명공학 분야다. 여성질환연구센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 과학기술부가 신규 우수연구센터(SRC)로 선정한 여성질환연구센터는 삼성서울병원과 연구협력 및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여성질환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화학이나 환경 분야에서 젊은 교수의 연구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장래가 촉망되는 부문의 연구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대학은 SRC(Science Research Center)에 이어 얼마 전 MRC(Medical Research Center)도 유치, 총 140억원의 연구비와 장학금을 지원받게 됐다. 기초과학 인재 양성에 더 노력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은.

 ▲얼마 전 우리 대학 의약정보연구소가 약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3만9000여종의 대부분 약품정보를 무료로 제공한다. 약품명, 투여량, 투여횟수, 투약일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약물 오남용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매우 실용적인 애플리케이션이다. 업그레이드, 개선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시도해본 적이 없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창조다.

 얼마 전 우리 대학이 전자신문과 산학협력 협약을 맺고 스마트앱 평가지수 공동개발과 평가, 평가지수 분석 및 발표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좋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도록 평가기준을 마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디지털 선도대학으로서 숙명여대에 주어진 임무다.

 -장기적인 대학 운영 전략은.

 ▲장기적인 운영 방향은 숙명여대의 ‘숙명 블루리본 프로젝트’로 집약된다. 최고의 영예를 뜻하는 블루리본과 재탄생한다는 ‘reborn’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숙명 블루리본 프로젝트는 교양교육 강화, 교육연구 지원, 국제화, 재정 안정화, 대학경쟁력 강화, 학생 만족도 제고 및 사회공헌이 핵심 가치다. 2012년까지는 역량 강화기로 볼 수 있다. 민족적 긍지에서 출발해 새로운 인재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다. 2013년부터 2016년은 성장 전환기다. 숙명의 미래 인재를 창조적 리더십 역량을 갖춘 명품 인재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이후 2020년까지는 성숙 정착기다. 창조적 리더십 역량을 갖춘 명품 인재를 민족적 긍지로 미래를 선도하는 리더로 육성하는 게 최종 목표다.

 -취업 지원 정책은.

 ▲숙명여대는 올해 서울 소재 여대 가운데 취업률 1위(55.7%)를 기록했다. 졸업생 취업에 공을 들인 결과다. 취업과 관련된 정책으로 먼저 학사후 과정을 들 수 있다. 지난 2008년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사정 악화로 청년실업이 큰 사회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고자 숙명여대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학교 지원을 받아 심화학습을 하거나 직업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학사후 과정을 시행했다. 6월 1일 현재 학사후 과정 참가자의 평균 취업률은 60%를 넘는다. 재학생의 기업체 현장실습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으로 숙명여대는 2년 연속 고용노동부 청년직장체험 프로그램 우수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최고경영자(CEO) 및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와 동문을 멘토로 초청해 희망 분야 사회 진출을 꿈꾸는 재학생과 교류를 돕는 ‘숙명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기업체 인사담당자 초청 교과목을 개설하고 세미나도 수시로 열고 있다.

 -대학입시를 겨냥한 사교육에 대한 생각은.

 ▲수험생에게 대학입시는 지상목표와 같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사교육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직 사교육에만 의존해 입시를 준비한다면 문제다. 기준을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사교육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다. 강의실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비교적 사교육 환경이 덜 갖춰진 지방 출신 학생들과 대화하며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산지식에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자연의 섭리라든가 환경으로부터 얻는 지식은 사교육으로는 절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대학이 입학사정관 전형 시 다양한 평가기준을 마련해 꼼꼼하게 수험생을 보고 뽑으려 하는 이유도 사교육 이상의 무언가를 통해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예비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학생이 되면 좋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만 하다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갑자기 얻게 된 자유에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눈앞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는지 10년, 20년 뒤 자신을 상상하며 인생 설계도를 그려 보기 바란다. 나만의 설계도가 있다면 대학생활을 한결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독서를 습관화하기 바란다. 책 읽기는 그 자체가 훌륭한 사고 훈련이다. 책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평생을 살아갈 귀한 자산을 얻을 것으로 믿는다.

 -교직원, 학생들과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점은.

 ▲지난해 첫눈 오던 날 학교 카페테리아에 학생 100명을 불러모았다. SNOW 사이트를 통한 지식공유 활동을 활발히 하기 위해 지식리더를 뽑았다. 이 학생들은 외국의 강의 동영상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학습활동을 돕는다. 첫눈 오기 석 달 전에 지식리더 발대식이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교정에 첫눈이 내리는 날 100명의 학생에게 커피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날 자리는 내가 한 약속을 지키는 자리였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직접 만나려고 한다. 교무위원들과 풋살대회에 나가서 직접 학생들과 실력을 겨루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같이 김장도 담그고, 함께 쪽방촌에 연탄도 나른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직원들도 이 자리에 함께 나서서 활동하도록 했다. 많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구성원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하는데, 이런저런 방안을 내놓아도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큰일을 한 번씩 치를 때마다 고생한 부서 팀원들을 모두 불러 함께 식사한다. 사무처장으로 일할 때 모든 직원의 이름을 다 외우면서 친해진 게 도움이 되더라. 조금 힘들어도 모든 이야기를 직접 들으려고 한다.

 -교육 철학은.

 ▲나는 항상 교육을 농사에 비유한다. 꽃꽂이는 보기에 화려하지만 그 꽃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농사는 다르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진득하게 참고 기다리며 품을 들이면 싹이 돋아 튼실해지고 해가 바뀌어도 싹이 올라온다. 일주일도 못 가는 꽃보다는 농사처럼 멀리 내다보고 해마다 싹이 올라오는 튼실한 나무를 키우는 심정으로 인재를 길러야 한다. 묵묵히 근본에 충실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자 대학의 역할이다.

 

 <한영실 총장은>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은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0년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84년 석사학위와 199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독일 본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박사후과정 연수를 마쳤다. 부경대 식품생명과학과 교수, 독일 본대학교 식품공학과 객원교수를 거쳐 1997년 숙명여대 교수로 부임했다.

 한 총장은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장, 사무처장, 교무처장을 역임했고, 2008년 9월 숙명여대 제17대 총장에 취임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자문위원, 방송위원회 광고심의위원, 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위원 등도 역임했다.

 특히 총장이 되기 전 KBS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식품영양학 지식에 기반을 둔 과학적이고 친절한 설명으로 시청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KBS 프로그램 공로상(2006), KBS 바른언어상(2006), 식품의약품안전청 특별공로상(2009), 대한민국 경영혁신 대상(2009), 대한민국 참교육대상(2010),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 인재경영 부문(2011)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m

 [대학혁신의 길, 총장에게 듣는다]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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