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빌게이츠 시애틀 회동] 공생발전을 화두로 80여분간의 열띤 토론

 [MB-빌게이츠 시애틀 회동] 공생발전을 화두로 80여분간의 열띤 토론

 마이크로소프트(MS), 보잉, 스타벅스, 아마존닷컴, 코스트코.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본사가 위치한 미국 시애틀을 지난 23일(현지시각) 이명박 대통령이 찾았다. 이 대통령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시애틀에서 태어나 자라고 여기서 MS를 창업해 세계적인 IT기업으로 일군 빌 게이츠 MS 명예이사장을 만나는 것이었다.

 새벽 어스름이 막 걷히며 동이 트기 시작한 오전 6시45분. 세계 최고 갑부인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운전사도 없이 손수 차를 운전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super busy) 대통령’이라고 칭한 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숙소인 웨스틴 호텔을 찾았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준비된 조찬을 거의 들지 않고 다이어트콜라만 마시며 대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 IT협력을 시작으로 맺은 관계가 ‘나눔’ ‘공생발전’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키워드에 공감대를 이뤄내면서 빈곤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원조에 힘을 모으게 됐다. 게이츠 이사장은 또 이 대통령의 국제자문위원으로 여러 현안에 자신의 생각과 지혜를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국제원조활동 협력=이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게이츠 명예이사장이 언급한 아프리카 봉사 활동으로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얘기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남아공에서 평창올림픽을 유치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기쁨과 보람이 그에 못지않았다”고 소개하자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그 세세한 얘기를 기억하다니 슈퍼 메모리 대통령”이라면서 이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두 사람 얘기는 자연스레 개도국 원조로 넘어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지만 한국처럼 발전가능성 있는 나라, 에티오피아 지원방안이 논의됐다. 질병퇴치를 위한 백신보급 계획, 우리나라 국제백신연구소(IVI) 방문,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개발원조총회 참가 등 세부적인 협력안에 의견을 주고받았다.

 ◇기업 기부문화 확산=이 대통령은 뒤이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봉사와 나눔에 대한 자발적 문화다. 아시아권은 아직 기부문화가 좀 부족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새 국정 어젠다로 제시한 ‘공생발전’이 대기업 압박으로 비춰지며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이에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변할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비교적 최근 일이라 돈을 쌓아두고 재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진정한 재투자는 사회 공헌이라는 문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로빈 리 중국 바이두 사장의 금연운동 기부, 아즌 프렘지 인도 위프로테크놀러지 회장 등 IT기업가의 자선활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여기에 인도 자동차회사 타타의 비영리재단 활동을 추가하기도 했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확대됐다”면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주는 나라로 변화한 매우 바람직한 롤 모델”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또 앞으로 봉사활동은 소아마비 박멸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한국정부 동참을 제안했다.

 ◇IT공생발전 해법은=이 대통령은 화제를 IT분야 공생발전으로 끌고 갔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이 MS 창업자이자 IT구루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IT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데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을 터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이 대통령의 공생발전 내용을 알고 있는지 ‘생태계’ 얘기를 꺼냈다. 우리나라 중소 SW기업과 엔지니어, 대학생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MS는 전 세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SW경진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최고 수상자들을 그가 현직에 있을 때는 직접 만나 간담회도 가져왔기 때문이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중기와 젊은 인재들이 글로벌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 조성이 정부와 대기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기술 세계화와 중기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데 그 지적을 더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한미 FTA·녹색성장=이후 이어진 대화에서는 한미 FTA가 화두로 올랐다. 내달로 예상되는 양국 의회 비준에 맞춰 한미 FTA가 양국 자동차 산업, 서비스 분야 등에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한국인의 능력과 기술이 탁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교육도 세계적 수준으로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도 모두 뛰어나 미국이 한국과 교류를 확대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연계된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신재생에너지 의제에서도 두 사람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대통령이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주축으로 우리나라가 녹색성장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나는 기후변화에 공동대응 필요성을 강력히 믿고 있는 사람”이라며 “게이츠재단과 별도로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의 전망=게이츠 회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해 “원자력은 당분간 가장 현실적이고 깨끗한 에너지지만 앞으로는 후쿠시마 원전과 다른 새 디자인, 차세대 원전이 필요하다”면서 이 분야에도 관심을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재생에너지가 현실성있는 수준으로 발전되려면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며 “새로운 에너지가 현실화될 때까지는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연에너지 시대가 될 것이다”고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에도 함께 협력하자고 제언했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직접 방문해 귀한 시간 나눠서 감사드린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게이츠 회장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기쁨”이라며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게이츠 명예이사장은 이후 아프리카의 또 다른 원조국인 나이지리아로 향했고, 이 대통령은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시애틀(미국)=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