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다음 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다시 연다. 1년 만의 부활이다. 그만큼 최근 금융 위기가 심상찮다. 지난 월요일 환율이 폭등했다. 코스피, 코스닥지수와 채권값은 폭락했다. 이튿날 유로존 재정위기의 새 해법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나오자 환율은 안정되고 주가는 반등했다. 개인투자자들만 이리저리 휩쓸린다.
정부 설명을 들어보면 금융시장 패닉 반응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유럽 주요 국가의 주가하락 폭은 우리보다 크다. 브라질, 러시아 등 우리보다 통화가치가 더 떨어진 나라도 있다. 외환보유고도 안정적이다. 무역도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이 부진하나 자동차, 철강 등 다른 산업이 선전한다. 그런데도 ‘국가부도위험’이라는 단어가 포털 인기 검색어에 느닷없이 올랐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투자 심리가 작용한다. IMF ‘트라우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조금 아물었다고 하지만, 환율 급등과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 나올 때 다시 드러나는 깊은 상처다. 어쩔 수 없다. 정부는 이런 심리를 탓할 게 아니다. 우리 금융시장만 혼란을 겪는 게 아니라고 강변할 일도 아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금융 대외 의존도 말이다.
우리 금융시장에 외국 자본이 득실거린다. 지난해 국내총생산 대비 외국인주식 비중은 32.1%다. 미국, 일본의 두 배 수준이다. 스위스, 영국 등을 제외한 유럽 국가도 높아야 20%대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 국가도 아니다. 영국, 홍콩, 싱가포르, 일본, 스위스와 같은 금융 허브도 아니다. 그런데도 외국 자본 비중이 너무 높다. 거의 ‘핫머니’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국에서 크고 작은 뉴스가 터질 때마다 우리 시장이 요동을 치는 게 아닌가. 심지어 국내 기관투자자마저 외국인 투자자 눈치를 본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중국처럼 규제할 수 없겠지만 외국 단기 자본 유출입을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곤란하다. 과세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단기간에 ‘단물’만 빼먹는 외국 자본이 발붙일 곳이 적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외국인 투자 이탈을 부추기고 시장은 더 엉망이 된다”는 항변이 나온다. 일시적으론 그렇다. 후유증도 있다. 소비 위축과 같이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도 체질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금융 위기는 더 크고 위험하다. 이를 헤쳐나가려면 지금 준비해도 늦는다.
적어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같이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의 다른 이름은 내수 진작이다. 신규 서비스와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의 혁파다. 중소벤처 기업 육성이다. 외국인이 떠난 주식 시장에 새 활력이 된다.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중앙과 지방 정부는 한때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에 열 올렸다. 최근 자취를 감췄다. 금융 외엔 매력 있는 투자처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루스 그린왈드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버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책에서 ‘세계화’를 거품으로 규정했다. 실체도 없는 허상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떠받들거나 분노한다고 주장한다. 정작 세계화한 것은 금융기관 외엔 거의 없다. 이들의 행위가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금융 위기를 만든다. 인터넷으로 세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니 위기는 더욱 증폭된다.
무역 중심 정책도 다시 봐야 한다. 그린왈드 교수는 “무역이 번영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번영이 무역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바깥’보다 ‘안’을 더 보라는 충고다. 새로 켜진 청와대 지하벙커 비상경제상황실에 그의 책이 놓이길 바라는 이유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