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의 업적을 남긴 스티브 잡스는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5일(현지시각) 애플 이사회가 성명서를 통해 잡스의 사망을 알린 직후부터 나흘간 기자는 현지 추모현장에 함께했다. 애플을 창업했던 잡스의 아버지 집 차고에서부터 애플 본사, 스티브 잡스의 자택, 그리고 시내 곳곳의 애플 매장까지 그가 남긴 흔적을 뒤쫓았다.
◇첫째 날…별이 지다=5일(현지시각) 오후 5시께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미 오랜 기간 건강이 좋지 않아 예상했던 일이지만 사망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현지 베이에어리어뉴스그룹의 브랜든 베일리 기자는 “잡스가 그동안 해왔던 혁신은 우리의 생활 방식까지도 변화시켰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며 “특히 실리콘밸리 근처에서 일하는 IT 분야 사람들은 잡스 사망 소식에 더욱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애플 매장엔 순식간에 많은 추모객들이 몰렸다. 이 매장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애플 매장이다. 사망 직후부터 이곳 애플 매장은 대표적인 추모지로 떠올랐다. 밤늦도록 많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매장 앞 창문은 잡스를 추모하는 쪽지글로 가득 찼다. 매장 직원들도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 레스토랑, 호텔, 주유소 등에도 잡스의 영정 사진이 내걸렸다. 쿠퍼티노시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는 주유하던 시민이 사진에 다가가 기도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사진 밑에는 ‘온 세상이 당신을 그리워 할 것이다(The world will miss you)’는 메시지도 함께 적혀 있었다.
◇둘째 날…애플 본사와 자택, ‘추모 물결’ 넘쳐나=이튿날 추모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애플 본사와 자택은 수많은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시에선 잡스 사망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도시 전체가 혼란스러웠음에도 잡스 추모 열기를 잠재울 순 없었다.
본사 사옥 내 인피니트루트 캠퍼스 한 켠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꽃다발과 함께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스티브 잡스의 옛 모습사진이 가득했다. 애플의 상징인 한입 베어 문 사과도 곳곳에 놓여있었다.
추모객 가운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적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그는 애플에 짧은 기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잠시 동안이라도 함께 일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이 애플을 사랑했고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너제이서 살고 있다는 플레이버 드로이어는 A2사이즈의 커다란 카드에 자필로 쓴 카드를 영정 사진 옆에 놓았다. 카드에는 “당신은 아버지 차고 안에서 빨간 사과를 보았고, 그 사과로 세상의 비전을 보았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을 켰다. 평생토록 없어지지 않을 기술을 만든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애도하다 저녁 시간이 다 돼서야 자리를 떴다.
애플 본사엔 하루 평균 500명 이상이 찾아왔고, 본사 캠퍼스 내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도 평소보다 2배 이상의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팰러앨토시 중심가에 위치한 잡스의 자택도 상황은 비슷했다. 멀리서 찾아온 추모객은 물론이고 주변 이웃들까지 이곳을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카드, 촛불, 그리고 한입 베어 먹은 사과가 잡스 집 앞 울타리를 따라 빼곡히 놓였다.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넘쳐나자 지역 경찰은 도로를 통제하기도 했다.
1920년에 지어진 스티브 잡스의 저택은 이 시대 최고 영웅의 임종과 함께한 성지가 됐다.
◇세째 날…철통보안 속 장례식 치러져=잡스의 사망에 따른 충격이 다소 진정돼 가던 3일째. 7일(현지시각) 오후 4시께 잡스의 장례식이 가족들과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밀리에 열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지에서 소식을 접한 기자 또한 온갖 방법으로 스티브 잡스의 장례식 장소를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인근 지역에 있는 10여곳 공동묘지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확인은 불가했다. 결국 장례식은 유족을 위해 비밀로 조용히 치러졌다.
애플 창업 시 쓰였던 잡스 부친의 집 차고는 이날 조용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이곳에서 애플컴퓨터를 만들었다. 실리콘밸리 내 로스앨토스시 크리스트 드라이브 2066번지에 위치해 있는 이곳 차고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차고가 됐다.
◇네째 날…잡스 목티·책 ‘불티’, 14일은 ‘잡스 데이’로=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맞이하고 4일째 날.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모든 물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추모객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잡스와 연관된 제품들을 모조리 사들이고 있다.
내달 말 출간예정이던 스티브 잡스 전기는 출간시기가 오는 24일로 앞당겨졌다. 전기는 온라인 서점에서 사전 주문만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아마존과 아이튠스에서는 이미 1위에 올랐고, 반스앤노블에서도 세 번째로 많이 팔린 도서로 꼽혔다.
스티브 잡스가 즐겨 입던 검정색 터틀넥(목티)도 동이 났다. 잡스가 입던 목티의 제조업체인 세인트크로이(St. Croix) 측은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었고, 일부 매장에선 매진됐다”며 “고인을 생각해 수익금의 20%를 미국암협회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검정색 목티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던 스티브 잡스는 ‘워스트 드레서’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서민적이고도 고집스러운 패션은 ‘베스트 드레스’가 됐다.
오는 14일 시판 예정인 아이폰4S의 예약 판매도 급증했다. 8일(현지시각) 쿠퍼티노시 근처 밸리페어몰에 있는 애플 매장엔 평소보다 서너 배 이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 직원은 “아이폰4S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예약 주문도 많아졌다”면서 “내 친지들도 오늘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세계 추모객들은 14일을 ‘스티브 잡스 데이’로 정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인의 마음 속엔 아직도 살아있다.
새너제이·쿠퍼티노·팰러앨토·로스앨토스(미국)=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