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고에 잠기나, 내륙의 힘으로 버티나’
유로존 위기가 중대 기로에 섰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연쇄 부도 파국으로 치달을지, 독일·프랑스가 구원에 성공할지 운명을 가를 초침이 돌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 G20(선진 20개국) 재무장관회의와 내주 초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그리고 다음 달 4일 G20 정상회담 일정이 모두 ‘유럽 구제’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상황 악화를 막으려는 각국의 계산과 수 싸움이 치열하다.
◇9회 말 구원투수로 나선 독일·프랑스=9일(현지시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긴급 정상회담을 갖고, 신용강등과 유동성 위기에 빠진 유로존 주요 은행을 위해 ‘수혈’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그리스 디폴트와 상관없이 유로존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포괄적이고, 중장기적인 협력 방안도 이달 말까지 만들기로 했다. 다음 달 초 G20 정상회담에 상정할 ‘글로벌 협조 공문’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까지는 몰라도 프랑스는 완전한 안정권이 아니란 부정적 시각도 많다. 프랑스만 전염되더라도 구원이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국은 걷잡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럽 정상들이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를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임 연구원은 “최근 유로존 정책의 핵심은 유럽 은행에 대한 방화벽(부실·신용악화 확산을 막는 방어벽) 구축”이라고 진단했다.
◇여전한 신용 강등 ‘도미노’=지난 주말 피치가 스페인 국가신용등급을 ‘AA-’로 2단계 강등했고, 이탈리아 등급은 ‘A+’로 기존보다 한 계단 더 낮췄다. 같은 날 무디스는 벨기에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떨어뜨려 등급하향 가능성을 열어뒀다. 무디스가 영국과 포르투갈 은행 21곳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낮춘 데 이어, S&P는 프랑스-벨기에 합작은행인 덱시아(Dexia)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빠뜨렸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프랑스 5대 은행이 자본 확충을 위해 1000억~1500억 유로 공적 자금을 요청했듯이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은행별 대책과 위기 극복 노력이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확산은 막을 수 있을 것”=전문가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가 사실상 그리스 디폴트를 전제로 한 은행·국가별 부도 확산 차단에 나선 만큼, 세계적 연쇄 부도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유로존 정책을 보면 최근 그리스 문제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와 별개로 유럽 은행이 그리스 디폴트 시에도 전염되지 않도록 조치에 나섰다”고 진단했다. 대표 조치가 내년 12월까지 400억유로 커버드 본드를 매입, 금융권 안정화에 쓰기로 한 유로존 결정이다. 이는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시행한 600억유로에는 못 미치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규모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앞으로 주요 일정에서 안정 회복 위주의 유로존 정책이 설득력을 얻고,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추후 위기 수위는 차츰 줄어들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쪽으로 모이고 있다.
이진호·이경민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