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 현금 흐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촉발된 유동성 위기가 기업 전반으로 전이되면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동안 수출 확대로 현금 유보율 등에서 안정세를 지켜왔던 IT기업들도 현금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글로벌 수요 침체에 따른 IT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IT 투자 확대와 이를 통한 성장 잠재력마저 둔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잉여현금흐름 전망치 크게 감소=17일 금융정보분석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증권사 3곳 이상의 실적 전망치가 공개된 시가총액 상위 20개 IT기업 현금흐름을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예측치보다 잉여현금흐름 규모가 무려 5조3353억원(30.1%)나 급감했다.
20개 IT기업 올해 잉여현금흐름 총액은 지난 7월 말 전망때 17조7358억원에 달했으나, 이번 조사에서 12조4004억원으로 줄었다. 잉여현금흐름(연결재무제표·국제회계기준)은 영업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현금에서 투자 활동에 들어가는 자금을 제외한 실질적인 현금 여력이다.
IT기업 잉여현금흐름 전망치가 한 분기만에 30%나 줄어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지난 7월 전망치에서 잉여현금흐름이 적자였던 곳은 3개에 불과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적자기업이 7개 기업으로 배이상 늘었다.
◇영업·시장 대외 환경 악화가 근본 원인=잉여현금흐름은 기업들 현금 창출과 가용 능력을 의미한다. 국내 IT기업 잉여현금흐름은 2분기 이후 계속 줄고 있다. 감소 원인은 미국과 유로존 등의 경기침체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와 유가 등 원자재가격 상승, 환율 등에 따른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현금비중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신용경색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달러부족 등 외부적인 쇼크에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경기 하강 국면에서 추가적인 쇼크가 올 경우 유동성이 낮은 기업에 나쁜 상황이 올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신용장 개설이 안되는 등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최근 기업들이 채권 발행을 늘리면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한 몫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오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에는 역발상 투자가 기회를 줘 이후 회복기에 국내 기업이 성장한 반면 지금은 유럽,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 경기가 나빠지고 있어 기업들이 섣불리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 악화>투자 위축>성장 부진 악순화 우려=국내 IT기업은 그동안 선제투자·승자독식·점유율 확대 등의 순환구조로 세계시장을 개척해 왔다. 지난 2008년 리먼사태 때도 다른 나라들이 모두 수출 악화에 허덕일 때 우리나라는 폭발적인 수출 성장세로 위기를 돌파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IT기업이 당장의 어려움에 모든 지출을 막기 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투자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IT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승훈 연구원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년 1분기까지 경기가 하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대응전략을 짜야할 것으로 본다”며 긴 호흡의 대응을 권고했다.
이진호·이경민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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