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신제품 ‘베가 LTE’에는 제스처 인식 유저인터페이스(UI)가 적용됐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사용자 손동작을 인식해 전자책 페이지를 넘겨준다. 전화가 울리면 직접 화면을 건드리지 않고도 손동작을 통해 통화할 수 있다.
제스처 인식 UI는 10년 전만 해도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상상’의 산물이었다.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영화를 통해 톰 크루즈가 허공에 손을 휘젓기만 해도 펼쳐지던 투명 디스플레이를 볼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다. 당시 영화를 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실제 ‘제스처 UI’에 대한 영감을 주고 원천기술을 개발했던 MIT 미디어랩의 한 기술자는 회사 설립을 통해 상용화를 실현하고 있다. 우주·항공뿐 아니라 바이오 생명과학 분야, 또 스마트폰과 TV까지 제스처 인식 UI는 융합을 통해 현실 속 기술이 됐다.
이렇듯 상상 속 ‘융합’이 현실을 진화시키는 핵심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기존 틀을 깨는 오픈 마인드 △‘+α(플러스 알파)’를 통한 새 가치 창출 △‘확장성’을 통한 경계 넘기 등이다.
◇융합 핵심은 ‘오픈, +α, 확장성’=“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인간이 원하면 기술의 진화에 따라 현실화될 수 있다.”
금융과 IT 융합을 주제로 이달 중순 개최된 ‘파이낸스 IT코리아’ 강연에 나선 양현미 KT 전무는 ‘상상이 현실로 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개방적 생각으로 기술의 가능성을 믿을 때 비로소 융합을 통한 성과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 산업간 융합을 위해 필수적이다.
일례로 IT와 융합을 통해 발전해 온 금융산업은 차세대 통신기술 및 스마트 모바일 기기 결합, 근거리통신(NFC) 기술 확산으로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스마트폰의 폭발적 증가는 금융과 통신의 벽을 허물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업무에 적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를 이용해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금융도 핫이슈다.
KT가 선보인 모바일 농장관리 시스템 ‘스마트팜’은 CCTV와 스마트 모바일 기기, 통신 및 네트워크, 원격제어 기술이 전통 농업과 결합한 것이다. 농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의 CCTV로 연계된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습기와 온도 등을 체크해 물도 줄 수 있다.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을 도모해 +α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도 관건이다. JP모건은 IT업체와 협업을 통해 분석기술을 개발, 고객 한 사람당 포트폴리오 분석을 8시간에서 4분으로 단축시켰다. 단순 업무에 소모되는 업무 시간을 줄여 창의적 서비스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하드웨어 강자였던 애플과 콘텐츠 강자였던 아마존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간 융합을 통해 기업 생존을 위한 +α 가치를 창출했다. 애플은 하드웨어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시킨 i-시리즈가 그 예다. 막강한 콘텐츠를 보유한 아마존은 파격적 가격의 199달러짜리 킨들을 출시, 상식의 룰을 깨고 기존 하드웨어 강자들에 맞불을 놓았다.
◇산업간 경계 없어 경쟁구도 바뀌고 기존 규제도 걸림돌=업종간 경계가 없어지고 경쟁구도도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는 직접 스마트패드를 통해 자동차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다양한 스마트 기능을 탑재하는 ‘서비스’ 회사로의 변신이 이뤄지면서 최종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기반으로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확장성은 필수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 플랫폼과 통신 융합은 확장성을 기반으로 가속되고 있다. 구글 월렛의 등장이 이를 증명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기존 금융 기업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글과 국민은행·KT가 경쟁해야 하는 영역파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양 전무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오픈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구글 등 플랫폼 기업들의 경우 안드로이드OS를 기반으로 한 세계 수억 명의 고객 기반, 유연한 미국과 선진 시장의 법 제도도 강점이다. 이미 케냐 등 회사에서는 3분의 1 이상이 모바일 페이먼트를 일상생활에 활용하고 있다.
기업 생태계가 바뀌었는데 법이 따라가지 못하면 오히려 기업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오픈 마인드, +α, 확장성 3가지 융합의 전제조건을 갖춰도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 법 규제와 정책 등이 바로 걸림돌이다.
스마트폰 뱅킹을 위해 PC와 같은 인증서를 요구한다던가 비금융사가 여신형 서비스를 도입할 수 없는 등의 규제가 그렇다. 아직 정부 부처와 국책기관 등도 융합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최만범 한국산업융합협회 부회장은 “융합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큰 틀의 국가 정책이 뒷받침되는 한편 기업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