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사업하면서 정부청사가 위치한 과천을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우리 기술력과 제품경쟁력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한 중소기업 CEO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내 스마트미터 시장점유율 75%로 1위를 지키며 판을 키우고 있는 여장부다. 우리나라 대표적 부촌인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에 원격검침시스템 및 인프라를 모두 공급했다.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싱가포르 우체국 스마트미터 공급권을 따냈다.
“글로벌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 더 이상 감나무 아래서 언제 감(정부지원)이 떨어질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2단계 사업이 시작됐다. 16일부터는 ‘제2회 스마트그리드 위크(Week)’ 향연이 펼쳐진다. 1단계가 정부주도의 초기인프라 구축과정이었다면 2단계는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소비자와의 소통이 핵심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전문업체는 비즈니스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며 투자를 미루고 있다. 아직도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정부 역할은 존재한다. 기기와 상관없이 연동 가능하도록 국가차원의 스마트기기 사용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한정 지역에서 민간사업자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전기거래제 도입 역시 필요하다. 그래야 휴대폰처럼 ‘전기료 올인원 44·54’ 요금제가 등장하고 시장경쟁과 에너지 소비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사업 성패는 결국 기업 몫이다. 정부예산으로만 시장을 도울 수 없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168개 업체 가운데 50%는 여전히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름만 걸어놓고 정부지원만 목 빠지게 기다린다. 온실 속 화초로 키워지다보니 비닐(정부지원)을 걷어내면 모두 시들해진다.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 연구개발은 꿈도 못 꾼다. 공무원과 관련 협회 앞에서 웅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세성을 핑계로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면 경쟁력이 없다. 멀리, 넓게 보는 CEO의 안목이 절실하다.
관련 업계는 향후 2~3년 안에 스마트그리드 산업이 활짝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표준화와 인력,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스마트그리드 산업의 외형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점이다. 스마트그리드협회와 사업단, 관련 업계가 ‘공생발전’이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제 협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에서 통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로 순항 중인 LCD TV가 그랬고 휴대폰이 그랬다. 불과 3~4년 전 일이다. 글로벌 스마트그리드 산업은 아직 처녀지다. 선점하는 기업이 승리한다. 스마트그리드 초기 시장을 정부가 열었다면 본궤도에 오르는 사다리는 기업이 놓아야 한다. 정답은 없다. 실패를 경험한 기업이 성공확률도 높다. 기업이 뭉쳐 도약대를 딛고 넘어서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