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뇌의 진화

 ‘400cc→670cc→1000cc→1500cc.’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다름 아닌 인간 뇌 용량의 진화 추세다. 인류의 진화를 관찰할 때 뇌 크기를 빼놓을 수 없다. 400만여년 전 지구상에 거주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뇌 용량은 380~450cc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인류인 홈 하빌리스는 530~800cc 크기의 뇌를 두개골에 넣고 다녔다. 완전한 직립 보행을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는 900~1100cc, 20만~5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 뇌 용량은 1300~1600cc였다.

 이 정도면 ‘뇌가 클수록 머리가 좋다’는 가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따라서 이런 전망도 가능하다. ‘미래 인류는 계속해서 머리가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 지능은 계속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머리가 클수록(뇌 용량이 늘어날수록) 지능이 좋다’는 말도 성립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소두(小頭)였다=실제로 1830년경 독일 해부학자 프레데릭 티에드만은 머리 크기와 ‘정신적 에너지’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머리 크기와 지능이 정비례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연구가 수행된 적이 있다.

 19세기 미국 자연인류학자인 새뮤얼 조지 모턴은 전 세계에서 모은 인종별 두개골 1000여개의 크기를 쟀다. 처음에는 겨자씨를 두개골에 가득 채운 다음 그 양을 측정하는 식으로 실험하다 겨자씨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돼 지름 0.125인치 납탄으로 부피를 쟀다.

 결과는 흑인보다 백인이 컸다. 중간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차지했다. 모턴은 ‘뇌가 큰 백인이 지능도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에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을 담았다는 거센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최근에도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종종 나온다.

 2001년 다니엘 티서란트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 박사팀은 50~81세 건강한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머리가 큰 사람의 사고능력과 지능속도가 작은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밝혔다. 기억력은 상관 없지만 사고력에선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는 이야기다.

 4년 뒤인 2005년 미국 리치먼드에 있는 마이클 맥대니얼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 박사는 1300명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장치(MRI)를 이용해 조사한 결과 ‘대체로’ 머리가 크면 지능 지수도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맥대니얼 박사 연구팀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머리는 일반인의 것보다 작은 편이었다”며 머리 크기와 지능의 상관관계가 그저 평균적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성인이나 여자가 어린이나 남자보다 머리 크기와 지능지수 정비례 관계를 더 잘 보여줬지만 그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머리 크기와 지능의 정비례 관계는 확신이 어려운 점이 더 많다. 프랑스 문학 천재 아나톨 프랑스는 1000cc 뇌 용량을 가졌지만, 영국의 문학 천재 조지 고든 바이런은 2230cc에 달한다. 같은 천재로 분류되는 것 치고는 너무 큰 차이다. 어쩌면 당장 우리 주위에도 공부나 일을 곧잘 하지만 맵시나게 작은 머리를 가진 이들이 쉽게 보인다.

 ◇대뇌피질 크기와 지능은 정비례=2년 전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셰리프 카라마 캐나다 맥길대학 몬트리올 신경연구소 정신과 박사의 대뇌 피질 두께에 따라 지능 차이가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대뇌피질이란 대뇌 겉 부분으로 신경세포들이 모여 있는 회백색의 질이다. 정확히 말해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전두엽·두정엽·측두엽 등의 피질 두께에 따라 지능의 개인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카라마 박사는 6~18세 아동과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역시 MRI를 이용해 뇌를 관찰하는 동시에 신경심리·언어·행동테스트를 실행하며 연구했다. 카라마 박사는 “지능과 대뇌피질 두께의 연관성은 대뇌피질의 많은 부위에서 감지됐다”며 “특히 뇌의 여러 부위로부터 정보가 집중되는 다기능 부위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미국국립정신건강연구소가 어린이 3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카라마 박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이들의 대뇌피질 발달 과정을 조사한 결과 지능이 평균보다 높은 아이들이 7세까지 대뇌피질이 매우 얇다가 12세가 되면서 급격히 두꺼워졌다. 반면에 평균 정도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처음부터 대뇌피질이 두꺼웠다.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면서 지능지수도 발달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난쟁이 인간’으로 불린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400cc에 그치는 뇌 크기도 절대적인 크기가 아닌 대뇌피질 진화에 따라 지능이 발달한다는 가설을 증명한다. 이 인종의 뇌는 침팬지와 비슷하지만 대뇌피질은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했다. 정교한 화살촉과 날카로운 돌칼을 만든 인종이었다.

 ◇인류는 ‘대두’가 아닌 ‘멀티 브레인’으로 진화=반드시는 아니더라도 대뇌피질이 두꺼울수록 머리 크기도 커질 개연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마르타 라르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팀은 지난 6월 현재 인류의 뇌 크기가 선사시대보다 오히려 작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라르 박사팀에 따르면 1만년 전 크로마뇽인의 뇌는 1500cc 정도였지만 현대인은 평균 1350cc밖에 안 돼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라르 박사팀은 뇌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퇴보’가 아닌 진화의 일부분이라고 본다. 인간의 뇌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좀 더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류의 ‘멀티 브레인화’다. 당신이 두개골에 품고 있는 그 뇌 외에 또 다른 뇌가 어딨는지 되물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호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보라. 기본적인 숫자·문자·이미지의 기억부터 연산까지 금방 해결한다. 책상 위 PC와 가방 속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친한 친구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하는 이도 있지만 인간은 기억을 ‘못 하기’보다 ‘안 한다’고 해야 옳다. 이 역할을 수행할 뇌가 또 있어서 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멀티 브레인은 다른 이의 뇌가 된다. 철인 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의 뇌는 얼마나 컸을지 모르나 수백~수천명에 이르는 트위터 팔로와 페이스북 친구끼리 모은 의견, 이른바 SNS ‘집단 지성’은 이보다 더 훌륭한 혜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다행이다. 흔히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머리만 크고 몸은 비쩍 마른데다 자판을 치느라 손가락만 길게 발달한 미래의 인류가 나타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인류가 보이는 뇌의 진화에도 논란거리는 있다.

 가끔 우리는 또 다른 뇌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본래 뇌를 너무 안 쓴다고 느끼기도 한다. IT분야 대가인 니컬러스 카 박사는 “스마트폰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곳에 집중하지 않는 뇌’로 만든다”는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다분히 부정적이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패드 등 멀티 브레인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경고도 가벼이 받아들일 수 없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처럼 자기가 원하는 멀티 브레인을 만드는 창의력의 원천이 본래 뇌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일지도 모른다.

 

. 참고자료=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