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파생상품시장' 얼마나 심각하길래

개설 15년만에 세계 최대 규모…실상은 `투전판`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강종훈 이영재 기자 = 파생상품시장이 조만간 금융당국의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개설 15년 만에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급성장했지만 느슨한 규제와 업계의 탐욕 등이 맞물려 부작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지나친 투기성 투자가 횡행하고 불공정거래도 끊이지 않는다. 개인 투자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큰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투전판`, `개미 무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다.

금융당국은 지수옵션 거래단위 조정 등 시장 건전화를 위한 개선책 마련에 착수해 연말까지 성과물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증권업계는 임기응변식 처방이 아니라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되는 합리적이고 근원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FX거래 리베이트 공개 등 검토

금융당국은 파생상품별로 시장에 주는 충격을 점검하며 건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FX마진거래는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 규모가 크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증권ㆍ선물사가 고객들에게 투자위험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리도록 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FX마진거래에 따른 개인 투자자 손실액이 2009년 765억원, 2010년 589억원, 올해 상반기 330억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투자자의 손실계좌 규모를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방안과 증권ㆍ선물사가 외국 호가중개업체에서 고객의 주문을 중개한 대가로 받는 중개수수료인 리베이트를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지수옵션 거래단위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업계에 거래단위 상향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지수옵션 거래단위를 50만원으로 올리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갑자기 5배로 상향 조정하면 유동성에 대한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스캘퍼(초단타 매매자)에게 초과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은 투자자의 5%밖에 되지 않는 스캘퍼가 거래대금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동성 공급자(LP)가 스캘퍼를 유인할 가능성이 크다. LP는 거래량이 늘면 그만큼 수수료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스캘퍼의 참여를 반길 수밖에 없다.

선물시장 투기성을 억제하기 위해 현물시장을 더 키워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증시에서 기관 비중을 늘리고 장기투자펀드 등에 대한 세제혜택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은 투자자들을 현물시장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업계는 시장이 위축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3일 "업계로서는 규제를 반길 수 없다"며 "규제 조치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생상품시장은 `개미 무덤`

당국이 파생상품시장 건전성 강화에 나서는 것은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파생상품 특유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에 현혹돼 시장에 뛰어들지만 구조가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에서 기관이나 외국인과 같은 `큰 손`들에 완패하기 일쑤다. 기관이나 외국인은 정보와 투자기법 면에서 개인보다 월등히 우월하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 주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현물시장과는 달리 파생상품시장은 `제로섬 게임` 구조여서 개인에 피해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투자자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만 봐도 이런 양상은 잘 나타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 동안 ELW 시장에서 개인은 1조8천164억원의 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유동성공급자(LP)인 증권사와 외국인은 각각 2천917억원, 977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정보를 독점한 큰 손들은 불공정거래를 하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 증권사 대표 11명을 법정으로 출두시킨 ELW 불공정거래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부 증권사는 빠르게 주문을 체결할 수 있는 전용회선을 스캘퍼들에게 제공하고 이들의 거래로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주가연계증권(ELS)도 불공정거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증권사 직원들은 ELS 만기일 직전 기초자산 주가를 폭락시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쳤다.

지난해 11월 옵션만기일에는 외국계 은행인 도이치뱅크의 직원들이 파생상품인 풋옵션을 대량 매수하고는 기초자산인 주식을 팔아치워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다가 적발됐다.

◇투기성ㆍ불공정 의심 거래 급증

개설 이후 급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작년에 거래량 기준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소액 투자자가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임에도 개인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1996년 거래량의 12%를 차지한 개인은 2001년 70%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나 개인 비중이 감소했지만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개인 거래량 비중은 32.7%였으며, 올해 1~10월 평균은 32.7%로 기관(29.4%)보다 높았다.

충분한 지식 없이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성 매매로 하루아침에 `쪽박`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발생한 사제폭탄 폭발 사건은 도박판처럼 변질한 파생상품시장의 폐해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주식 선물거래에서 큰 빚을 진 40대 남성이 손실을 만회하고자 범죄를 저질렀다. 코스피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파생상품인 풋옵션에 투자하고 나서 공공시설 폭발사건을 일으켜 주가 하락을 유도하려 했다.

올해 파생상품시장의 불공정거래 의심 사례 신고 건수는 작년보다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8년 141건, 2009년 53건, 작년 18건으로 급감하던 신고 건수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129건으로 늘었다. 그만큼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졌다는 뜻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ELW 등 파생상품과 관련한 불공정거래에 관심이 쏠리면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커졌고 불공정거래 신고 건수도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ELW 기본예탁금 제도 도입 등 시장 건전화를 위한 조치를 여러 차례 내놨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자 다시 파생시장 전반을 점검하기에 이르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