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빼빼로데이를 보내며

 지난 11일은 ‘빼빼로데이’였다. 지인과 작은 모임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내놓는 후배를 보며 ‘11’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최근 동네 슈퍼부터 백화점, 마트, 편의점에는 국산에서 수입산까지, 작고 앙증맞은 미니에서 대형 키다리까지 ‘빼빼로’가 가득했다. 천년에 한번 온다는 ‘밀레니엄 빼빼로’라는 ‘의미포장’도 더해졌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이어서인지 청소년들의 과자 주고받기는 절정을 맞았다.

 달력을 보니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었고 ‘지체장애인의 날’이었다. 한미 FTA를 앞둔 우리 농업인의 어려움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장애인의 힘든 삶을 살펴보는 날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있는 날은 과자회사 마케팅 전략에 가려지고 말았다.

 일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밸런타인, 화이트데이 등을 과자제조사 상술로 치부하며 초콜릿 대신 쌀과자를,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선물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빼빼로와 초콜릿의 위세를 잠재우지 못했다. 잠시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도였다.

 청소년이 빼빼로데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1이란 숫자가 네 개 겹친 11월 11일에 빼빼로라는 친숙한 과자를 연상시키는 마케팅 소구 때문이다. 그냥 ‘재미’있는 연상작용일 뿐이지만 집에서 학교로, 학원으로 쳇바퀴 돌듯 하는 청소년에게 이만큼 재미있는 날도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는 빼빼로데이를 애써 폄하한다. 우리식품 애용을 앞세워 억지로 청소년의 욕구를 다른 쪽으로 돌려 세우려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다. 청소년에게는 과자 제조사 상술보다는 1년에 한번 재미있는 ‘이벤트’가 됐다. 문화가 됐다는 말이다.

 이제 11월 11일을 잘 활용해 학업에 짓눌린 청소년 일상에 활력소를 주자. 보다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유도해 새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국명없는 행사로 시작했지만 작은 것부터 우리 것으로 만들어간다면 후일 ‘크리스마스’처럼 온가족이 즐기는 멋진 기념일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