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침 경북 구미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15분 정도 차로 달리자 칠곡군 북삼읍에 위치한 피엔티 제2 공장(6000평)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과 피엔티의 최첨단 공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공장에 들어서자 여느 공장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조립 라인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여공들 대신 연구원처럼 보이는 남자 예닐곱 명이 장비 옆에서 설계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김준섭 피엔티 사장은 “우리 회사 전체 직원 128명 중 103명이 연구원이에요. 일반 회사 공장을 기대하고 방문했다면 처음부터 반전인 셈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피엔티는 롤투롤 장비 업체로 지난 2003년 김준섭 사장이 창업한 회사다. 김 사장이 설계팀장으로 재직 중이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나면서 후배 4명을 데리고 피엔티를 직접 차렸다.
‘사람과 기술(people and technology)’이란 영문을 따 회사 이름을 지은 것도 김 사장의 인재와 기술 욕심 때문이다.
25년간 롤투롤 장비를 개발해온 김 사장이 진두지휘하면서 회사는 예상보다 빨리 궤도에 올랐다. 세계 두 번째로 LCD 프리즘필름용 장비 개발에 성공했으며, 2년 전 2차전지용 분리막·PCB용 동박 장비 등을 국산화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피엔티 장비는 해외 제품보다 30~50% 저렴하지만 기술력은 대등한 수준이다. 납기도 일본 업체의 절반인 2~6개월 수준에 불과해 고객사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 롤투롤 장비 시장은 30조원 규모에 달하고, 국내 시장도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그러나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여전히 일본·독일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상당수 국내 롤투롤 장비 업체들이 영세한 규모로 해외 장비를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피엔티의 기술력과 성장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피엔티는 LG화학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분리막 장비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 덕분에 지난해 7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2차전지 장비 매출은 올해 310억원으로 증가한다.
LS엠트론이 진행하는 1조원 규모 설비투자에도 피엔티는 동박 장비를 공급하기로 했다. 피엔티는 이를 발판으로 고가 동박 장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은 8㎛ 두께 제품이 양산되고 있는데, 피엔티는 이미 6㎛ 두께 동박을 양산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신규사업으로 반도체용 장비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일본 가이저사와 협약을 맺고 올해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다이 본더 장비를 3대 공급했다. 내년에는 90대 가량을 공급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비싼 해외 장비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경기에 덜 민감한 편이다”면서 “유럽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73억원에 불과했던 회사 매출이 올해 832억원으로 늘어나고, 내년에는 1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엔티는 하나그린기업인수목적회사와 합병을 추진 중이며, 내년 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