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연구개발(R&D).’
한때 삼성 R&D는 ‘인재’ 전략으로 귀결됐다. 좋은 인재만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속도’다. 최근 삼성전자는 차세대 R&D 전략 핵심 사안으로 속도를 지목했다.
빠른 제품 개발이 승자를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에 이어 수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 다시 판도를 뒤집어 놓은 갤럭시 시리즈가 이를 방증한다. 갤럭시S를 위한 하나의 코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원이 세 명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했다는 후문이다. 얼마나 급했을지 추측 가능하다.
제조는 외부업체에 맡기고 R&D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는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의 강점은 제조 기반의 빠른 공급망관리(SCM)였다. 지난 몇 년간 삼성에서는 R&D ‘속도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IT 측면 지원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설계자들을 위한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시스템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적기 출시(Time to Market) 역량 강화를 목표로 전 사업부문의 PLM 시스템을 개편해왔다.
삼성전자 PLM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삼성SDS 관계자가 삼성이 바라본 ‘차세대 PLM’ 개념을 최근 한 행사에서 공개, 이 내용을 전한다.
◇‘느린’ R&D 의사결정 바꿔라=삼성SDS 관계자가 밝힌 최근 전기·전자산업 R&D 환경이 가진 네 가지 이슈는 △속도(Speed) △세계화(Globalization) △최적화(Optimazation)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제품 개발 환경은 복잡해지고 있지만 기업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복잡도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삼성이 말한 핵심과제다. 삼성SDS 관계자는 “제품은 복잡해지는 반면에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큰 폭의 개선이 없어 격차가 커지고 개발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이슈로 ‘속도’를 언급한 배경도 기술 발전 속도와 소비자 요구 변화를 기업의 R&D 프로세스가 시급히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 PLM 프로젝트를 하면서 수원에 상주하는 동안 모바일 세트를 개발하는 센터의 불이 꺼진 것을 본 적이 없다”면서 “월화수목금금금 밤낮 없이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의 수명주기가 단축되고 더 많은 제품을 제때에 공급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부연이다.
두 번째 이슈로 제기한 ‘세계화’도 삼성이 애플과 경쟁을 치르기 위한 핵심과제다. 애플은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R&D와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 관계자가 속도 혁신을 위해 삼성전자가 가장 많이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가상의 개발 및 연구·생산 환경이다. 일반적으로 ‘가상제품개발(Virtual Product Develope)’이라 불린다.
이른바 제품 디지털 설계 및 구현 검증이 가능하고 가상 제품에 의한 고객 경험 검토가 가능한 ‘디지털 기반 제품 개발 체계’를 의미한다. 주로 상품기획 및 디자인, 제품 설계 및 검증, 생산기술 및 생산을 위해 △가상화 기능 서비스 △디지털 개발 협업 △전사 제품 개발 시스템 통합 등을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 문제점을 조기에 검증할 수 있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이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VPD 환경을 구축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올바른 차세대 PLM 프로젝트는=삼성전자는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P&G와 킴벌리클라크 등 해외 일반 소비재기업 벤치마킹을 진행했다. 이들로부터 얻은 것은 ‘소비자들을 위한 올바른 제품 개발(Build the Right Product)’과 ‘올바른 제품 개발을 위한 올바른 방안(Build the Product Right)’이란 두 가지 과제였다.
궁극적으로 제품 개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보의 희소성과 불완전함 때문에 의사결정이 어려운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차세대 PLM 프로젝트의 방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전체 최적화’라 보고 있다. ‘전체’란 제품 개발을 위한 개념 단계부터 계획, 설계, 시스템 구현, 적합성 검증, 생산, 판매, 단종까지 전 수명주기를 말한다.
삼성SDS 관계자는 “프로세스 기반 엔지니어링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분적 최적화가 아닌 전체 제품 개발 프로세스 연계가 이뤄져 PLM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R&D 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앞당겨지는 만큼 이를 위한 시스템 지원도 필요하다. 보다 초기 단계에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를 바로 의사결정 프로세스로 보고 있다.
차세대 PLM 프레임워크를 구현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적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비즈니스 역량’과 ‘엔지니어링 역량’이다.
비즈니스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시작은 전략적 제품 계획이다. 고객 요구를 관리하면서 제품 플랫폼을 계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이를 위한 시스템이 없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개발 제품의 포트폴리오를 IT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삼성SDS 관계자는 “최근 포트폴리오 관리를 비롯한 비즈니스 역량 제고가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엔지니어링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가상 제품 개발 환경 구축과 친환경 요인 고려가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협업, 통합된 제품 개발 환경 및 관리 등도 핵심 사안 중 하나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삼성의 가상제품 개발환경 및 차세대 PLM 프레임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