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식물인간 상태(person in vegetative state)에 있는 환자가 의식을 되찾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식물인간 환자들은 의식이나 반응이 없지만 분명 살아있는 상태다. 음식물과 산소를 공급해주고 꾸준히 간호한다면 어쩌면 이들이 다시 의식을 되찾는 기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식물인간이란 표현은 엄밀히 말해선 틀린 말이다. 환자에게서 의식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환자가 정말로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지만 외부에 이를 알리는 데 필요한 운동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들만 손상됐을 수도 있다.
이런 환자들과 대화가 가능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기기인 휴대용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phy)로 식물인간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뇌파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뇌-정신센터(Center for Brain and Mind)의 애드리언 오언(Adrian Owen)과 다미안 크루즈(Damian Cruse)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식물인간이 의식이 있으면 뇌 전도에 반응하고 따라서 식물인간이 의식 유무를 뇌전도로 알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오언 박사는 16명의 식물인간 환자들과 12명의 일반인들에게 ‘삐’ 소리가 나면 오른손 주먹을 쥐거나 발가락을 움직이는 상상을 하라고 주문한 후 뇌파를 기록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해 분석한 결과 16명의 식물인간 중 3명에게서 일반인과 동일한 패턴이 나타났다.
오언 박사는 “이 같은 결과는 식물인간 3명이 주문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식물인간이 의식이 있다면 뇌전도를 통한 대화가 가능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사실 식물인간의 의식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특수영상기술로 뇌의 활동을 관찰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fMRI는 비용 부담이 크고 또 의료기관이 이 영상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해 뇌전도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아 더 큰 활용이 기대된다.
<제공: 한국과학창의재단>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