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업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SW) 사업대가는 오랜 기간 골칫거리다. 과거 인력 투입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하는 ‘맨먼스’ 방식이나, 수행 기능별로 비용을 산정하는 ‘기능점수(펑션포인트)’ 방식이나 모두 현실에 적용하는 데 문제점을 갖고 있다. 정보화 사업을 발주하는 공공기관이나, 사업을 수행하는 시스템통합(SI) 및 SW기업이나, 모두 비용 산정에 불만을 갖는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적용했던 지식경제부 고시인 ‘SW사업대가 기준’을 내년 2월 폐지한다. SW사업대가를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시장에서 결정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SW기업 모두 지켜만 보고 있다. 공공기관 대응방안과 향후 정책 추진상황을 분석해 봤다.
지경부 고시인 SW사업대가 기준 폐지가 공공정보화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을 전망이다. 대부분 공공기관은 SW사업대가 폐지에도 이를 적용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는 방침이다. 자체적으로 SW원가 분석을 통해 기준안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정부가 만든 SW사업대가 기준 적용을 ‘의무’에서 ‘자율’로 바꾼다는 정책 취지가 무색하다.
◇기존 SW사업대가 의무 적용=공공기관들은 SW사업대가 기준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기존 기준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SW사업대가 기준을 대체할 다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에 대한 비용 및 원가분석을 실시해 자체적으로 SW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공공기관은 극히 드물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공공기관은 SW사업대가 기준 폐지에 따른 대응 방안을 고민조차 하고 있지 않다.
국내 최고 정보화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주력계열사도 자체 사업비용 산정을 위해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확고한 기준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업무량 측정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SW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공공정보화 사업 예산이 축소되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인 비용 산정은 생각조차 못한다. 공공기관 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SW사업대가 기준이 폐지되더라도 갑작스럽게 새로운 기준을 마련, 적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대부분 공공기관들은 정부가 또 다른 방안을 마련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SW사업대가 가이드라인, 또 다른 고시=정부는 SW사업대가 기준 고시 폐지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한다. 가이드라인은 지식경제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제정, 이르면 내년 1월 공개된다. 앞서 관계자 대상으로 가이드라인 제정 공청회도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가이드라인이 기존 고시에 담긴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단지 고시는 1조, 2조 등 조문 형태로 이뤄져 있는 반면 가이드라인은 서술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다르다. 기존 고시에서 문제가 됐던 대가 기준에 대한 모호한 해석은 가이드라인에서도 그대로 발생된다. 제시된 가격 기준은 하한가임에도 불구, 공공기관은 이를 상한가로 여긴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설립 취지를 받아들이는 데도 공공기관에게 문제가 있다. 정부는 과도기 혼란을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이지만, 공공기관들은 이를 또 다른 고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공기관 구매담당자는 “SW사업대가 기준은 가능한 정부에서 만든 것을 따를 것이다”며 “자칫 다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분쟁이 발생되거나 감사에 적발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SW사업에 대해 제값을 주고 싶어도 정부 가이드라인이 그러하지 않다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제값주기 실현을 위해 지경부가 추진 중인 SW사업 저장소 구축도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먼 훗날 얘기다. 발주기관이 SW사업 원가를 의무적으로 입력하도록 하기 위해 SW산업진흥법을 개정할 예정이지만, 국회 통과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 원가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DB) 확보에도 시일이 필요하다. 지경부 관계자조차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을 예상하지 못한다. SW기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원가분석을 꺼리고 있다.
◇국방부·코스콤 등 자체 SW사업대가 기준 마련=자체적으로 SW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하는 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기관은 정보화 규모가 큰 국방부다. 국방부는 자체 SW사업 대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10개월 동안 국방정보화사업 비용분석 제도화 방안 연구를 실시한다. 기준이 마련되면 기획, 예산, 인사, 동원, 군수, 시설, 전자, 행정 등 8개 자원체계 정보화사업 전 분야에 적용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내년 2월 SW사업대가 기준이 폐지됨에 따라 산출기준이 없어 혼란이 예상된다”며 “정보화 사업 준비단계에서 비용을 산정할 수 있는 자체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스콤도 한국거래소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사업에 적용하기 위한 자체 SW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말 관련 컨설팅이 완료되면 기능점수 기준으로 업무량에 따라 비용을 산정한다. 코스콤 관계자는 “기존 고시에 명시된 기능점수 방식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체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도 부분적으로 자체 비용 산정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지난 2008년 SW도입 비용을 자체적으로 산정하기 위해 업무량분석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기능별 트랜잭션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기업은행 이병남 팀장은 “그러나 모든 정보화사업에 대해 자체 기준을 적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지경부 고시인 SW사업대가 기준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과거 수운영시스템 SW에 대한 자체 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표>공공기관의 자체 SW사업대가 기준 마련 현황
자료 : 각 기관 종합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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