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 사행산업 급팽창…정부는 방치

사행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다. 늦어도 2014년이면 합법적인 사행산업의 총매출액이 2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또, 경마, 카지노 등 합법적 테두리 안의 사행산업은 그동안 잘 관리됐으나 불황 우려가 확산한 올해는 한계선을 넘어섰다.

사행산업 이용자들이 불법 도박에 빠지는 사례가 많은데도 정부는 위험 수위로 치닫는 사행산업을 사실상 방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카지노와 경마 등 산업을 유치하려고 치열한 로비전까지 펴는 실정이다.

조세 저항 없이도 막대한 세수와 기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국가 도박`이 악마의 유혹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행산업 매출액이 주요국들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도박공화국이란 오명이 붙은 이유다.



◇불법도박 최대 88조원…범죄ㆍ탈세 온상

사행산업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정부가 담당하는 합법적인 6대 사행산업(외국인 카지노 포함)의 매출액은 2001년 9조6천448억원에서 지난해 17조3천27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작년 복권과 체육진흥투표권을 제외한 사행산업 이용객(연인원 기준)은 4천만명에 육박한다.

올해 3분기까지 6대 사행산업은 3분기까지 12조7천728억원(외국인 카지노 제외)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2014년쯤에는 정부가 감독하는 6대 사행산업의 총매출액이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공인한 사행산업은 중독치유·예방시스템이 작동하고 비교적 잘 관리된다. 불법도박은 사정이 다르다. 지하세계로 숨어 들어가 탈세와 범죄의 온상이 된다.

아주대 산학협력단은 불법도박 규모를 53조7천억원(2008년 기준)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사설경마 시장이 아주대 추정치의 3~7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불법 도박 규모는 53조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아주대 조사에서는 사설경마 시장이 2조6천885억원에 불과했다. 형사정책연구원 연구로는 2009년 9조~10조원으로 관측됐다. 마사회가 2008년 단속사건의 거래규모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로는 최대 20조7천7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일부 국가기관은 불법 도박 규모가 64조~88조원으로 추산한다.

한국마사회 사설경마 담당 정태일 팀장은 "올해 초 적발한 사설 경매센터 한 곳만 보더라도 108명이 1천만원 이상 거래했다. 연간 매출액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설경마 시장 규모가 2조~3조원 수준이라는 분석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법사행산업은 탈세의 온상이다. 불법 사설경매 규모를 10조원으로 추정하면 세금과 공적자금 누락액은 2조7천억원에 달한다.

도박 중독을 넘어 자살과 범죄로 연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따르면 작년 20세 이상 성인 중 6.1%가 도박중독 증세를 보였다. 3천676만명 중 224만명에 달하는 규모다.

민주당 김충조 의원이 강원지방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강원랜드[035250]가 있는 정선군 사북읍에서 발생한 5대 범죄는 119건으로 인구 1천명당 46.2건을 기록했다. 서울 서초구(8.1건)의 5.7배, 강남구(12건)의 3.9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도박피해자모임 정 덕 공동대표는 "도박하다가 잘못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올해 들어 10월까지 정선군 내 자살자와 변사자가 8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원랜드에 소송을 제기한 10명이 잃은 돈이 3천200억원인데 반해 강원랜드 측 주장은 1천320억원으로 엇갈리는 등 자금을 둘러싼 의혹이 많다"며 "로비 탓인지 정치권을 포함해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 `국가도박`의 모순…지자체는 유치전

우리나라의 사행산업은 관리·감독기관과 허가·운영주체가 사실상 같다. 모든 권한이 국가에 있다.

사행산업의 관리·감독과 총량규제 권고 권한은 국무총리실 산하 사감위가 맡고, 공공기관이 행정부처의 허가를 받아 사업체를 운영한다.

가령 카지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허가를 주고 공공기관인 강원랜드 등이 운영한다. 경마는 농림수산식품부가 허가하고 운영은 한국마사회가 하는 식이다.

한쪽에선 도박산업을 통해 돈을 벌고 다른 한쪽에선 도박 중독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국고를 투입한다. `국가 도박`의 아이러니다.

문제는 수익이다. 도박이 독점 산업이다 보니 수익이 짭짤해 정부로서는 납세 저항이 없는 막대한 세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매출총량 규제가 있기 전인 2001~2008년 사행산업 매출액은 연평균 7.5% 성장했다. 총량규제가 시행된 이후 2009년 3.3%, 지난해 4.8%로 성장률이 다소 둔화했다. 그러나 지난해 6대 사행산업 매출액은 17조3천270억원으로 이미 2001년 대비 79.7%나 늘었다.

여기서 나오는 세수는 막대하다.

지난해 사행산업에서 걷힌 세금은 국세, 지방세를 포함해 2조1천291억원에 달한다. 각종 기금은 2조1천702억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합법적인 테두리의 사행산업에서 세금과 기금 등 4조3천억원 가량의 국고를 얻은 셈이다. 2001년과 비교하면 사행산업이 내거나 출연한 세금과 기금 총액은 113% 늘었다.

사행사업의 이런 성장세와 조세수입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사행산업을 유치하려 한다.

부산시가 경륜장과 경마장을 잇달아 유치해 2003년과 2005년에 개장했다. 2009년엔 제4경마장을 유치하려고 전북 장수군과 정읍시, 전남 담양군, 경북 영천시, 상주시, 인천시 등의 지자체가 달려들기도 했다.

카지노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의 재원 마련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명분으로 1997년부터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이 지지부진한 송도국제도시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유치를 돌파구로 제시했고, 전북도 역시 새만금을 화교자본 유치를 통해 중국 진출의 전초기지로 개발하겠다며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장외발매소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경마, 경륜, 경정 등은 본사업장 이외에 수십 개의 장외발매소를 운영한다. 그 수는 2001년 36개에서 지난해 53개로 늘었다.

장외발매소가 많아지다 보니 장외발매소 매출이 본사업장보다 더 커지는 현상도 생긴다. 경마는 과천과 제주, 김해에 본사업장 3곳이 있고, 서울·경기·인천·충청·경상·전라 지역에 장외발매소가 있다.

지난해 장외발매소의 매출액은 5조4천471억원으로 본사업장 3곳의 매출액인 2조1천294억원보다 2.5배나 많다. 사행산업이 전국화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도박 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행산업의 순매출액 비율이 우리나라는 2008년 0.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리스(0.90%), 이탈리아(0.71%), 캐나다(0.81%) 다음으로 높다. 미국(0.61%), 일본(0.38%), 독일(0.20%), 프랑스(0.44%) 등 주요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동국대 박병식 교수 연구팀은 사감위에 제출한 `사행산업 감독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적 방안` 보고서에서 "합법 사행산업의 확대는 사회에 사행심리를 만연시키기 때문에 불법 사행산업도 동시에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합법 사행산업은 건전한 근로의식과 윤리의식을 약화시키게 됨에도 합법이라는 틀 때문에 불법 사행산업보다 사회윤리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