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135개 업체가 정전으로 멈춰 섰다. 1000억원 정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적으로 재가동하는 데만 일주일 정도 걸렸다.
올해 들어 대규모 정전만 세 번째다. 지난 1월 여수산업단지 정전이 시작이다. 산업단지 내 업체들은 약 600억원의 피해를 봤다. 여수·울산 등 우리나라 양대 석유화학단지가 한 해에 모두 대규모 정전 피해를 본 것은 처음이다.
9·15 정전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주무부처 장·차관이 한꺼번에 경질됐다. 피해규모도 엄청나다. 올해 세 차례 대규모 정전에서 기업 피해액만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력 공급이 불안하다. 급증하는 수요 때문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나서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전기는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전기 수요가 급증할 때 완충 장치를 마련하기 어렵다. 전력 공급원을 다양화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도시가스 연료 자가 열병합발전이 대안=대형 건물 및 소규모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자가 열병합발전이 새로운 전력공급 시스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가 열병합발전의 장점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도시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도시가스는 땅속 배관으로 공급, 전깃줄보다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이 적다. 전국 환상망 형태로 배관이 구성돼 있어 공급이 안정적이다. 비상 발전기 겸용으로 쓰는 자가 열병합 발전설비에 공급되는 도시가스는 관련법에 의거 일반 가스설비와는 별도로 배관이 연결돼 있다. 화재 등의 사유로 전기가 끊어져도 가스는 공급돼 비상발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한국가스공사에서 50일분 이상 천연가스를 비축해놓고 있어 안심이다.
국내 도입도 안정적이다. 도시가스는 가스공사가 장기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고 러시아산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가 도입되면 공급 안정성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가스공사는 도시가스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설비도 확충, 2024년까지 1536만㎘의 저장시설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가스공사는 2013년 삼척기지 준공 및 2017년 동해가스전 저장시설 전환 등을 통해 저장설비를 지속 확충해 천연가스 저장비율을 지난해 10%에서 2024년 21%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열과 에너지, 직접 만들어 쓴다=자가 열병합발전 시스템은 도시가스로 사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에너지원으로 전력과 열을 동시에 생산·이용해 효율적이다.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배열을 이용, 냉·난방을 하기 때문에 기존 화력발전과 보일러 보다 30~40% 정도 효율이 높다. 청정연료인 LNG를 사용,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단순 발전방식 보다 30%~40% 감축할 수 있어 국제적인 환경규제 대응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전에 따르면 2009년 화력발전 송전단 효율은 38.79%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전력변환 효율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여기에 송배전 손실 4.07%를 감안하면 1차 에너지의 34% 정도만 전기로 변환돼 수요처에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자가 열병합발전은 발전시설을 소형화해 단위 사용처에 설치할 수 있어 송배전 비용과 손실을 줄여주고 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용처 냉·난방이나 산업 공정용으로 쓸 수 있다. 에너지 다소비 건축물에 있는 기존 디젤발전기 대신 비상용 예비전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중앙난방시스템에 비해 연료비용은 올라가지만 전력비용이 크게 줄어 32% 정도 절감효과가 있다.
스마트그리드 보급에도 자가 열병합발전이 도움된다.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소규모 분산형 전원을 뜻한다. 건물이나 소규모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사용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시작했다.
◇대규모 설비 위주 보급으로 외면 받아=자가 열병합발전은 여러 가지 장점에도 설치 실적은 저조하다. 2000년대 이후 자가 열병합발전은 분산형 전원으로서 에너지 수요관리와 에너지 절감 등의 장점을 인정받아 보급 활성화 정책이 추진됐다. 하지만 자가 열병합발전 방식이 에너지는 절감되지만 비용은 줄어들지 않는 기이한 현상으로 시장에서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이다. 유가와 환율에 따라 연동하는 요금제로 인해 도시가스 평균 요금은 2001년 1월 399.82원에서 지난 10월 768.06원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 도시가스 요금이 오르다보니 에너지 효율성이 상쇄되는 것이다. 이미 도입한 수요처도 도시가스 요금이 올라 가동을 멈추고 있는 곳이 많다.
정부도 자가 열병합발전 보다 상대적으로 보급이 쉬운 집단에너지에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자가열병합발전협의회에 따르면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17년까지 총 2600㎿의 자가 열병합발전을 보급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수립한 4차 계획에서는 2019년까지 2182㎿로 보급 규모를 축소했고 대부분 집단에너지용 열병합발전소로 바뀌었다.
국내 열병합발전 보급실적은 2009년 말 기준 집단에너지는 95%인 3427㎿를 기록했지만 자가 열병합발전은 213㎿로 5%에 그쳤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에 비해서도 0.3%에 밖에 되지 않는다.
산업체에서도 에너지목표관리제도 시행과 관련해 자가 열병합발전 설비를 이용,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정부 정책 부재로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가열병합발전협의회 관계자는 “중대형 열병합발전은 집단에너지 지역지정에 따른 의무도입 제도 시행, 전력산업기반기금 지원, 발전차액 보조 지원 등으로 경제성을 확보해 보급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소형 열병합발전은 소유주체가 일반 건물주라 국가 지원정책에서 제외됐고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사업으로 도입한 곳도 가스요금이 올라 절감액이 줄어 ESCO 설치 업체마저 손해를 보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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