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상 한국소프트웨어전문기업협회 회장 yslee@datastreams.co.kr
범정부 소프트웨어(SW) 생태계 구축전략 발표 후 그 후속조치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중 하나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내년부터 추진하는 범부처 소프트웨어인력양성사업에 12년간 300억원이 지출될 것이라고 한다. 이 투자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양성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였다.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WBS)와 같은 야심만만하게 발표한 프로젝트도 정부가 자금을 직접 기업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SW 생태계 구축 전략은 말 그대로 시장을 제공하고, 건전하게 유지,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실리콘밸리는 1950년대부터 대학을 중심으로 탄생한 지식을 기업이 발전시켜 큰 기업으로 성공시키고 이를 다시 대학과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반복해 오고 있다. 무수한 IT 스타들이 이런 생태계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이런 스타기업들이 오늘날 미국 지식산업을 이끌고 세계를 주도한다. 모두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길러낸 우리나라 엘리트 중심의 민관협력 모델은 중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됐다. 그 과정에서, 아니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이 그 기업들의 제품을 구매하고 아껴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수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수출도 가능하고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거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도전적이고 합리적이며 최대한 넓은 양질의 시장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자금 지원보다 선결돼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기업 제품엔 22%의 유지보수율을 적용하면서 국산 제품에 8%만 인정하는 것은 SW산업 성장 자양분을 글로벌 기업에 넘겨주는 꼴이다. 한 산업군에서는 국산SW의 사용 빈도가 높은 반면 다른 산업군에서는 글로벌 제품만 고집하고 국산제품을 견제하는 경우도 있다. 즉, 사용자의 마인드와 국내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이 좋은 국산제품에게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FTA가 확산되는 대외적 환경에다 대내적으로도 대기업 IT서비스 업체가 글로벌 제품을 가지고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풍토에서는 국산SW가 설 자리가 없다.
국내 대응 SW 기술이 없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많은 전문 SW기업들이 국산화를 통해 수입대체효과를 얻고, 외화의 유출을 막고 있다. 콧대 높은 글로벌 제품이 우리나라에서는 맥을 못추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수출액만 가지고 산업기여도를 따지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산업 융합화가 가속화되면 SW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다. 1조달러에 이르는 세계 SW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2%인 200억달러가 조금 넘는 규모다 보니 정부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IT의 대명사인 휴대폰, TV, 메모리시장을 다 합해야 세계 시장규모가 2500억달러에 그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향후 우리의 산업방향이 어떻게 개편돼야 하는지는 더욱 분명해 진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SW산업과 유사한 게임산업에선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순위 리스트에 자랑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대기업이 없는 자생적인 생태계 내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충분한 자본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지경부가 발표한 대책을 어떻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행해, 좋은 시장, 좋은 생태계를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거래는 지식산업을 낳는 어머니다. 공정거래에 기반한 시장을 구축하면 그 위에 우리 국민의 역량이 세계적인 SW 대가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수요가 수단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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