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와 환율 등 경제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청와대도 비상대응체제는 유지하되 필요한 업무와 사업은 평상시 처리 수준에서 소화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21일 코스피는 55.35포인트(3.09%) 급등한 1,848.41로 마감, 김 위원장 사망 이전인 16일 종가 1839.96을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도 1,147.7원으로 마감, 지난 16일보다 오히려 10원 떨어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미 뉴욕증시 급등 효과가 ‘김정일 충격’을 넘어섰으며, 앞으로 다시 조정을 보이더라도 북한보다는 유럽 불안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정부 비상경제상황실장을 맡은 강호인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 주가와 환율이 (김정일 사망 전인) 16일 수준을 회복하는 등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강 차관보는 “수출입과 생필품 등 실물경제가 영향에서 벗어났으며 외국에서도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이상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덧붙였다.
이날까지 일정을 취소하고 24시간 비상대응체제로 움직여왔던 이명박 대통령도 22일 예정된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주재할 예정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중단했던 부처 새해 업무보고도 23일 보건복지·여성가족부부터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연기된 법무부와 법제처,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 보고는 새해 초 예정된 보고 일정이 완료된 뒤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반도 안보 관련 중대 변화가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한 필요 일정은 소화한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전언이다.
하지만 대북 정보력에서 바닥을 드러낸 국가정보원은 새해 예산이 삭감될 처지에 몰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민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이날 “국정원 예산은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5000억원, 예비비 3000억원, 여기에 각 부처 곳곳에 숨어 있는 예산까지 포함하면 총 1조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국정원장이 김 위원장 사망을 ‘TV 보고 알았다’는 한심함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민주당 정책위와 정보위 위원들과 협의, 불필요한 사업과 예산을 삭감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급속도로 차분해진 국내 사정과 달리 주변국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기민하다. 중국은 전날 후진타오 주석 조문에 이어 원자바오 총리까지 이날 오전 베이징 소재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직접 조문했다. 차기 유력 지도자 시진핑까지 포함하면 중국 최고급 수뇌부 모두가 조문을 한 셈이다. 권력 교체기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동북아내 외교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적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도 뉴욕에서 대북 지원을 위한 실무협의차 김 위원장 사망 후 첫 북미 접촉을 갖는 등 잇따라 북한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내놓고 있다. 김정은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리더십(new leadership)’으로 지칭하면서 지도자 자격은 사실상 인정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