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수프라, MR2, 닛산 스카이라인 GTR, 페어레이디, 실비아, 혼다 NSX, S2000, 미쓰비시 GTO, 마쯔다 RX7. 이런 차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카 하나 없는 국산차의 현실을 가슴 아파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그 많던 일본의 스포츠카들은 누가 다 먹었는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델이 겨우 GTR과 370Z 정도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제네시스 쿠페가 있다. 물론 티뷰론과 투스카니가 있었지만 전륜구동인 이들이 제대로 된 스포츠카로 인정받을 순 없었다.
어찌됐든 오랜 기다림 끝에 후륜구동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가 우리 곁에 왔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11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늘씬한 차체와 강력한 엔진, 화려한 뒷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앞모습에 제대로 칼을 댔다. 성형수술은 완벽하게 성공해서 이전 얼굴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인데다 이전보다는 낫다는 반응들이지만 여전히 완벽한 미모로 불리기엔 어색한 면이 있다. 모든 자동차가 예쁘고 싶어 하지만, 특히 스포츠카가 예뻐야 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크게 바뀐 앞모습과 함께 변화의 핵심은 엔진이다. 210마력을 내던 이전 2.0 터보 엔진은 더욱 강력한 275마력을 내는 신형 2.0 터보로 바뀌었고, 303마력을 대던 3.8 엔진은 직분사 기술을 더해 350마력을 내게 되었다. 수치로만 본다면 이제 제대로 된 스포츠카라고 자부할 만하다. 시승차는 380 GT다.
인테리어도 많이 바뀌었다. 센터페이서가 아반떼와 쏘나타의 라인을 응용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한층 화려해졌다. 센터페이서 중앙에는 엑셀, 토크, 유온계가 자리해 스포츠카 이미지를 풍기고 있지만 효용성은 의문이 든다. 기어 레버는 이전 시빅의 것을 닮았다. 스티어링 휠에는 시프트 패들이 장착되었는데, 손으로 당기게 되는 부분의 면적이 좁아 궁색한 느낌이 든다. 효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면 가장 먼저 스티어링 휠 무게감이 큰 변화로 다가온다. 저속에서 너무 무겁다. 그 동안 현대차들의 가벼운 스티어링이 지적되어 온 것을 감안해서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의 스티어링을 무겁게 세팅한 듯한데, 너무 과했다. 분명 파워스티어링 임에도 저속에서 두 손으로 힘주어 돌려야만 스티어링이 돌아갈 정도다. 그렇다고 고속으로 올라갔을 때 충분히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전 모델에 비해서는 고속 안정성이 좋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기대 이하로 가볍다. 저속에서는 가볍게 조작할 수 있고, 고속에서는 충분히 무거워져야 한다는 명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세팅이다. 반면에 스티어링 응답성은 상당히 좋다. 스티어링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예리한 핸들링을 선사한다.
엔진 성능은 강력하다. 8단 자동 변속기의 변속도 매끄럽고 빠르다. 레드존까지 회전수를 올리며 급가속하면 회전 상승이 대단히 매끄럽고 엔진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펀치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원상 0~100㎞/h 가속에 5.9초가 걸리는데, 350마력 스포츠카에 기대하는 가속력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580㎏ 중량에 350마력이면 5초대 초반 가속력은 나와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가격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경쟁력은 아주 높다. 그 동안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스포츠카가 없었던 만큼 수입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3천만원대 중반의 제네시스 쿠페는 가격 대비 최고의 성능을 가진 스포츠카임에 틀림없다.
박기돈기자 nodikar@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