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포스코그룹은 출범 후 최대 구매 혁신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약 1년간 개발한 공급관계관리(SRM) 시스템은 포스코그룹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구매 혁신 활동 일환이다.
지난해 7월 포스코 계열사 임직원이 참여한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주축이 돼 시작했던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 포스코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동일한 기준과 프로세스를 적용한 이 시스템으로 구매 업무를 한다. 공급업체를 평가하기 위한 표준도 정했다. 이 기준을 공급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데 활용키로 했다는 것이 프로젝트 핵심이다. 종전에는 각 계열사 특성을 반영한 평가 시트를 개발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포스코그룹 구매 혁신 사례는 최근 몇 년간 주요 제조 및 서비스, 금융 기업들이 추진하는 구매 혁신의 핵심 사안을 포함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가 기준 정립…역량별로 육성책 달리해=포스코그룹 구매 혁신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급업체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누고 평가 및 육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포스코 계열사 협력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신용 △품질 △가격 △납기 △환경안전 △협조도 등 6개 카테고리로 나뉜 81개 항목 풀을 만들어 평가 데이터를 시스템으로 축적하고 활용키로 했다. 점수 등급에 따라 △프라임 △가치 △개선 △순환 등 4개 그룹으로 나누고 그룹 차원에서 육성 지원책을 달리했다.
높은 평가를 받아 프라임 그룹에 속한 공급업체들에게는 향후 중견기업으로 클 수 있도록 지원 강도를 높였다. 가치 그룹은 맞춤형 지원을, 개선 그룹은 개선 활동을 지원하면서 기회를 부여했다. 순환 그룹은 자율 개선을 유도하다 공급사로서 제재를 가할 수도 있도록 했다. 해외 공급사는 컨트롤이 어려워 4등급인 순환등급이 나왔다고 해서 전략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에 개선 그룹으로 부여하고 협업토록 했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공급업체들을 위한 ‘계획(Plan)-실행(Do)-진단(See)’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6개 카테고리 별로 점수가 나오니 강점과 취약점을 공급업체들이 스스로 알고 개선점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약 1~2년 이 체제가 순환되면 공급사들의 역량이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단순히 포스코 계열사들의 구매 역량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협력업체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해가는 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다.
모든 계열사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다 보니 그룹사별, 구매 유형별로 각각 평가 결과에 대한 집계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A사가 포스코그룹의 2개 업체에 공급을 한다면 각각 평가 점수에 대해 조회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통합 공급관계관리(SRM) 시스템은 각 그룹사별로 구매 데이터 인터페이스를 받아 공급사 평가를 위한 기준 정보로 활용되는 부문과 구매 의사결정 지원 정보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급 업체 정보를 조회 가능할 뿐더러 각종 구매 통계에 대한 분석까지 이뤄진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2020년 매출 200조 달성을 위해 패밀리 경영이 필수적이며, 통합 SRM을 도입하면 패밀리 차원의 공급망 관리가 가능해져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처럼 공급업체를 평가 및 육성하는 툴로 SRM을 확장시킨 또 하나의 기업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수천개 협력사를 관리해야 하는 조선 업계 특성을 반영한 협력사 등급 진단을 통해 협업 전략 및 육성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SRM 시스템을 개발 후 지난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SRM 시스템으로 주문정보, 현장 자재 변경 정보 등을 협력사가 실시간으로 파악 및 대처할 수 있음은 물론 관련 대응력도 기를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품질 △가격 △납기 △안전 △경영 등 지표를 주축으로 협력사별 레벨 진단을 통해 점수를 매기고 우수, 양호, 불량 등 등급을 매겨 각각 맞춤형 전략을 적용한다. 정량적 수치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자료와 정성적인 설문 자료를 모두 반영해 평가 정확도를 높인다.
평가 결과에 따라 기업에서 혁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공장혁신·가치혁신 등 혁신 과제를 도출,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과제 진행 사항도 모두 SRM 시스템으로 성과실적이 모니터링 돼 협력업체가 성장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 수주업의 특성상 수많은 협력 업체들과의 신속하고 정확한 협력이 핵심 경쟁력이며 이 기업들과의 동반성장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기업을 바꾸는 구매 혁신 전방위 확산=포스코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구매가 협력업체를 성장시키는 최접점 시스템인 동시에 투명한 기업 성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절차라는 인식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가격을 깎는’ 부서가 하는 행정적 업무가 아닌 전략적 업무로 인식하는 것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구매 행위는 단순히 협상으로만 비춰졌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해 삼성그룹 등에서도 구매 출신들이 그룹 요직 또는 계열사 사장직을 꿰차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 전체 공급망을 한 눈에 보면서 이를 조율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감사 등 업무에도 제격이기 때문이다. 구매 혁신은 전방위 확산되고 있으며 삼성전자에 이어 올해도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자재 공급 효율화를 위해 최근 잇따라 SRM 프로젝트를 추진했거나 하고 있다.
기업들의 목표는 투명한 구매부터 협력업체 평가, 통합 구매를 통한 원가절감까지 목표는 다양하다.
LG전자는 서버 등 IT 자원을 포함해 컨설팅, 광고 등 비용 집행을 위한 구매 시스템을 개편하는 일반구매(General Procurement) 시스템을 세계 사업장에 확산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구매를 하게 되면 업체 간 공정한 거래가 가능해지고 업체 선정 투명성도 높아진다”면서 “계약 프로세스에 대한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도 올해 핵심 부품 공급업체들과의 시스템 연계를 통해 구매 조달 역량을 한층 높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주요 포장재 협력업체들과 정보 공유를 위한 신규 공급정보시스템(SIS)을 개발해 협력업체들과 생산 및 자재관리 역량을 향상시켰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기존에는 협력업체에서 ‘생산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 재고는 얼마나 있느냐’ 했을 때 공장장이 구매 담당 앞에서 메모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협력사 영업·자재·구매 담당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혁신활동으로 꼽는 것이다.
제조 기업들의 구매 혁신은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금융권 구매 혁신은 구매 채널을 단일화하는 등 ‘통합’을 통한 시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IBK기업은행 등이 IT 자회사를 통한 통합을 추진한 대표적 사례다.
이같은 국내 기업들의 제조·금융 등 구매 시스템으로는 엠로와 아이컴피아 등 국산 SRM 소프트웨어가 공급돼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포스코와 대우조선해양의 SRM 시스템을 통한 협력업체 평가와 육성책>
<출처 :각사>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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