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설계대로 공사할 수 없는 전기공사 현장

 지난 26일 영하 10도를 웃도는 혹한의 날씨에도 전력신기술을 이용한 전신주 교체공사가 한창인 경북의 한 군 소재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는 전신주를 옮기거나 땅을 뚫는데 사용되는 오거(AUGER)크레인 차량과 굴삭기, 전기 작업자 5명이 투입됐다. 인근 도시 간 고속도로 신축공사에 따라 기존 전신주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공사가 막 시작 됐다.

 설계와 달리 정작 전력신기술 공법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전력 지점 설계대로라면 ‘오거크레인용 유압식 확장기를 이용한 전주가설 공법’ 등 기계화 시공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설계 지시에도 없는 굴삭기와 인력이 매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기술은 땅을 파는 과정에서 오거크레인에 별도의 확장날을 장착해 굴착직경을 85㎝까지 넓혀 토사굴착량 최소화와 작업시간 단축 등 시공능률 향상을 이유로 지식경제부 위탁으로 대한전기협회가 2006년에 전력신기술로 지정했다. 이후 한전은 전국 전신주 교체·신설 공사현장 99%에 적용하게 했다. 전기협회가 밝힌 2009년 사용실적만 2만건에 달한다.

 이 기술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10분도 채 안걸렸다. 굴삭기로 조심스럽게 20㎝가량 땅을 팠을 때 직경 15㎝가 넘는 전기선이 발견됐고 30분 후 1m 지점에선 통신케이블 3개와 암반이 나왔다. 해당 전력신기술로 작업 했더라면 이들 전기선과 통신케이블 훼손은 불 보듯 뻔했다. 이 때문에 굴삭기와 사람이 직접 삽을 이용해 일일이 살펴가며 작업할 수밖에 없다.

 마침 현장을 찾은 인근 지역 전기공사업체 대표는 잘 알려진 암반지역이 아니면 설계에 99% 반영하고 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한 공사업체 대표는 “바보가 아니면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모르고 사용하면 수도관·통신케이블 등을 훼손해 복구비로 적지 않은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사현장 대표도 “한전 설계자가 현장 상황도 확인하지 않고 99% 해당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며 “해당 공법으로는 땅속 장애물은 물론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은 아예 굴착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기술을 사용하면 전기공사업체는 기존 공법보다 적은 공사비용을 한전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져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불가피하게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했다고 발주처인 한전에 허위 작업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한전은 신기술이 적용되면 기존 공사보다 발주액이 줄어 유지보수 예산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현실성을 타진하지 않고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현장 작업자는 “농로 등 양호한 지역에서도 지하 매설물 탐지 없이 오거크레인 직접시공은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며 “굴삭기를 사용해도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지난달에는 상수도관을 파손해 50만원을 변상하고 복구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 공법은 전기협회가 2006년에 전력신기술을 지정한 후 2009년에 활용실적이 높다고 판단, 2014년까지 사용하도록 했다. 공사업체는 이 기술을 2014년까지 아무 대책 없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1200만원 상당의 오커크레인용 확장 굴착 유닛을 임차하거나 보유해야 하고 유료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구=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