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먹구구식 동반위

 이념·사상보다 더 강력한 것이 밥줄이다. 처자식 먹여 살리고 부모 봉양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밥줄 앞에 강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신념과 이념을 밥줄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소위 ‘밥줄 끊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회사 생존과 직결된 정부 정책은 회사 존립은 물론 개인 생계에 직격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밥줄 끊는 일에 준비 없이 달려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소 상생 방안으로 마련한 중기적합업종 선정이 산업계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합업종 품목 선정부터 대중소 간 대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업종별 특성과 환경을 덜 파악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데스크톱PC 부문에서 불거진 TG삼보컴퓨터의 사례는 추진 과정의 안일함을 잘 보여준다. 대중소 기준 적용법이 불과 수 개월 만에 바뀌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의사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은 적합업종 취지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TG삼보는 데스크톱PC 부문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됐지만 차량용 블랙박스 부문은 중소기업으로 포함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정부 정책은 수 년 뒤 나라와 산업의 미래를 바꿔놓는 중요한 결정이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후배 공무원에게 정책 마련의 중요성과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양쪽 입장을 잘 조율해야 ‘최고의 정책’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중기적합업종 선정은 최선의 정책 마련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업계 현황 파악과 경청의 자세가 미흡했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수백여개 품목에 걸쳐 적합업종을 선정하면서 애매한 경우 ‘양측이 알아서 합의하라’는 식의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특히 IT 산업은 국내에 글로벌 대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배제한 채 국내 기업 간 대-중소 시장 가르기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 외국계 기업 모두 소위 ‘밥알이 곤두서는’ 요즘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