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일본 출판 시장에서 가장 부러운 점은 ‘문고판’의 존재다. 가로 10㎝, 세로 15㎝ 정도의 작은 크기에 한 손으로 쥘 만한 두께의 문고판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 119’는 우선 외형이 눈에 띈다. 문고판은 아니지만 124페이지라는 얇은 두께에 가격도 8000원으로 저렴하다. 지하철로 이동 중에 꺼내 봐도 부담 없는 수준이다. 보통 ‘경제’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면 연상되는 하드커버에 두꺼운 책과는 딴판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쓴 이 책의 내용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심화된 경제 불평등과 대기업 위주 정책을 비판한다. 재벌가 아들의 편법 상속 특혜와 고학력 88만원 세대가 공존하고 재벌가 딸들이 펼치는 베이커리 사업에 동네 빵집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던 이명박 정부에서 서민의 삶은 뒷걸음쳤다. 젊은이들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수준의 대학을 나와도 실업에 허덕인다.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속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물가는 유례없이 치솟고 가계 부채 역시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책 제목에 나온 119는 헌법 119조 2항을 의미한다.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자유방임이 가져올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한계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저자는 이제 성장 만능주의 정책보다 경제 민주화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 경제와 참여 경제, 분배 정의라는 3가지 중심축을 제시한다.
아울러 △기회 균등 선발 제도 △재벌 출자 규제 △정리해고 보완 △금산분리 강화 등 12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독자에 따라선 이 책의 정치적 색깔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설득력 있는 대목도 적지 않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책만큼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가 대면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해명하면서도 또 그 처방까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은 일찍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또 “깊이 있는 학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씌어졌다”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의 평가처럼 이 책은 매우 풍부한 표와 그래프를 담아 경제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문장도 어려운 용어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해 거부감을 없앴다. 한 마디로 재미있고 잘 읽히는 잡지의 경제 기사를 모아놓은 느낌이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총선과 대선이 이어진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각 정치 세력은 선거를 앞두고 경제 살리기 해법을 내놓는다. 이 책은 각각의 해법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여러 개의 돋보기 중 하나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