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해가 뜨기 직전 깜깜한 새벽. 하얀 입김이 검은 하늘 위로 퍼졌다.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건물로 뛰어들었다. 서울 마포구 팬택 본사 2층 대강당은 벌써 사람들 온기로 가득했다.
“신입사원이세요. 앞줄에 앉으세요.” 양복 입은 남자가 다소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손짓을 했다.
“드디어 졸업했네….” 한 귀퉁이에서 나누는 대화가 귓가를 스쳤다.
오전 7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박병엽 부회장이 대강당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기자를 보자 “뭐 여기까지 오셨어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4년 8개월 만의 워크아웃 졸업 이후 처음 여는 시무식. 강당에 모인 400여명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담담하게 신년사를 읽어 갔다.
“허영과 자만을 걷어내고 잘못된 점을 고칩시다. 5년 전 워크아웃에 돌입하던 당시로 돌아가 정신을 재무장합시다.”
그의 일성은 ‘초심으로 돌아가자’였다. 워크아웃 졸업의 기쁨보다는 ‘제2 창업’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18분기 연속 흑자와 워크아웃 졸업이라는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초와 기본부터 다집시다.” 신년 경영 키워드로 ‘내실 경영’을 꺼냈다.
2012년 첫 매출 4조원대 돌파와 스마트폰 1300만대 판매라는 단기 목표가 제시됐다. 2015년 10조원 매출·향후 50년 영속기업 이라는 중장기 비전도 담겼다.
그는 내실경영을 위해 ‘수익중심 사고·낭비요소 제거·사전 품질확보·성장동력 확보’라는 네 가지 추진 과제도 제시했다.
신년사가 끝나자 무대에는 신임 임원 10명이 올라왔다.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임원으로 새출발하는 사람들이다. 한 명씩 각오를 밝혔다. 짧지만 분명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신입사원과 같은 열정으로 일하겠습니다” “열정, 미래, 꿈이 넘치는 회사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최고의 기업, 50년 영속하는 기업을 다 같이 만들어갑시다.”
시무식에는 공채 27기 신입사원 120명도 참석했다. 첫 출근을 신년 시무식으로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시무식이라는 곳을 참석한 이들도 풋풋한 각오를 내놓았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서현선씨(27·품질기술팀)는 “사람들이 ‘품질만큼은 팬택’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일하겠다”며 또박또박 말했다. UI기획팀 새내기 이지수씨(27)는 “나에게도, 회사에도 너무나 의미 있는 출발”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들은 “워크아웃 기간에 취업을 결정했지만 곧 졸업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시무식이 끝난 뒤 21층 구내식당엔 떡국이 차려졌다. 입김을 후후 불어 넘기는 떡국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워크아웃 시절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꽃이 피어올랐다.
21층 창밖으로 희뿌옇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4년 8개월 만에 재기한 팬택이 처음 맞는 여명이었다. 박 부회장은 서둘러 임원 회의장으로 향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