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후진`하는 습관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지상파 방송 TV프로그램이 있다.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기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방을 찾아가 시청자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새해 벽두 이 프로그램을 생각게 하는 뉴스가 있었다. 고속열차(KTX)가 정차역을 지나친 뒤 10여 분간 후진을 했다. 자동차도 아니고 KTX가 역주행을 하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1km 이상 역주행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던 승객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정차역이 영등포역이 아니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다른 역이었다면. 중국에서 일어났던 대형 참사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기관사 개인의 실수다. 영등포역은 지난 수년 간 KTX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냥 지나치는 역이었다. 기관사 역시 습관적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영등포역에 정차하는 열차가 하루 2편 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대로 ‘아비투스’는 무의식적으로 이 열차를 다음 역으로 이끌었던 게 분명하다. 습관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도 간혹 들을 수 있다. 예컨대 휴가 나온 이등병이 이사를 가기 전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행위나, 아침에 일어난 사람이 화장실을 다녀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는 이런 저런 행동도 무의식에 이끌린 행동이다.

 2012년이 밝았다. 총선·대선이 예고된 선거의 해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전면에 나섰고, 민주통합당도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야 모두 변화와 혁신에 총력을 기울인다. 주요 기업들 역시 혁신과 협업 등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를 맞아 대한민국이라는 열차가 고속주행을 하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우선 오래된 관성에서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도 후진할 수 있다. 나쁜 습관을 버려야만, 우리나라도 역주행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적게는 수년 간, 많게는 수십 년간 무의식적으로 축적해 왔던 습관 중 하나 쯤 버릴 것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