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인터뷰/세계정보시스템학회 최초 한국인 펠로 - 이재규 KAIST 교수

 [CIO BIZ]인터뷰/세계정보시스템학회 최초 한국인 펠로 - 이재규 KAIST 교수

 이재규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잇따른 KAIST 학생 자살 소식에 학생들을 향한 자작시 ‘먼저 간 학우들에게’가 알려지면서 경종을 울렸다. 이 교수가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외로이 스스로의 목숨을 던지는 너에게. 너의 고통을 알지도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서 내가 죄인이다.” 시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기자 앞에서 또 한번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SW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학자로서 산업계에 이바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말한 죄목이다. 이 교수는 수십년간 기울여 온 세계적 학술지 편찬 활동과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에 근거해 한국 SW와 정보화 산업의 갈 길을 설파했다.

 ◇세계적 정보시스템 강국 되려면 ‘브랜드 컴퍼니’ 필요=이 교수는 세계정보시스템학회(AIS) ‘펠로(Fellow)’로 선정된 첫 한국인이다. AIS 펠로는 학자들의 추천과 심사 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여하는 최고 명예 석학 훈장이다.

 미국에서 생성돼 세계적으로 성장한 학회인 AIS의 펠로로, 이 교수가 선출된 것은 지난 연말 세계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인 정보시스템 학자가 세계에서 인정받기란 한국 소프트웨어(SW)가 세계적 SW로 인정받는 것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한국 SW 산업 세계화를 위해 진정성 있는 어투로 내놓은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브랜드 컴퍼니’를 만들자고 했다.

 SW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같이 ‘종합 상사’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정보 서비스 전문 브랜드 회사가 세워지고 거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식으로 작은 회사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대 브랜드 기업이 다수 중소 SW 기업들을 거느리면서 이들의 해외 진출을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중소 SW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번번이 막는 높은 장벽이 신뢰도와 인지도 부족이기 때문이다. 마케팅·광고 등에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이 브랜드를 갖추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기업 산업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글로벌 브랜드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대기업에 인수가 되는 것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브랜드 컴퍼니의 설립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될성 싶은 회사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망할 회사를 자꾸 도와 고용을 늘리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와 문화 중요성 알아야=이 교수가 두 번째로 제시한 것은 중소기업 내 글로벌 역량을 가진 경영인이다. 대부분 중소 SW 기업들이 ‘기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다. 기술자 출신 CEO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는 ‘기술’ 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과 경영인이 자본과 기술을 엮어 글로벌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에 많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인재 육성이 기술 양성만큼 중요한 과제며, 시장을 키워나가지 못하고 기술 연구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계와 학계가 상생 효과를 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가 세 번째로 강조한 것은 글로벌 문화에 대한 침투력이다.

 이 교수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도 없던 페이스북에 밀린 싸이월드의 약점을 ‘문화’라고 봤다. 기술적으로 더 앞서 있었지만 한국에서 시작된 서비스인 만큼 외국인들이 접했을 때 다소 생소한 ‘언어’ 환경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수는 “영어는 지방 및 특정한 국가의 사이트란 생각을 못하지만 싸이월드는 중국 사람이 볼 때도 한국 사람들이 노는 곳이라며 안 오더라”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 머물고 있는 국내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전자상거래 전문가로서 이 교수에게 G마켓과 옥션이 이베이의 손 안에 들어간 것 만큼 마음 아픈 일도 없다. 이 교수는 왜 세계적인 전자 상거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 없는지 개탄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전자, 철강, 자동차 분야 세계적 기업들이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며 “페이스북과 구글이 작은 기업으로 시작해 아이디어로 세계를 제패했듯 우리 기업들도 충분히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에 대한 역발상 필요=이 교수가 올해 준비하고 있는 논문은 ‘데이터’에 대한 역발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데이터로 ‘이론’을 증명하려 하는 학계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사실 많은 기업들도 같은 오류를 범한다. 데이터를 수집해 경영 이론을 증명하려 한다.

 이 교수는 “지금 학계 연구 결과물은 데이터에 의존해 이론을 검증하려는 데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결론을 내리는 일이 바로 ‘이론을 증명하는 과정’이란 것이다.

 해마다 대학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논문들의 대부분이 이에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것을 본 이 교수는 이러한 연구를 지양하자고 했다. 새로운 이론을 통해 더 생산적으로 바뀌자고 제안했다.

 이론이 데이터 보다 직관적으로 선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론이 데이터를 설명하는 것이지 데이터가 이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을 증명하느라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증명해야 할 이론과 증명하지 않아도 될 이론을 구분하고, 데이터가 아닌 철학적 근거를 갖춰 기존 이론을 넘어서야 한다.

 이 교수는 “미래 설계를 위한 새 이론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식으로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것 연구에 집중하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에 연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른바 ‘디자인 마인드’다. 젊은 인재들이 학문적 패러다임에 매여서는 안될 것이란 경고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풍조를 만들어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규 교수 프로필

 이재규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를 이수했다.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 경영정보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KAIST에 합류해 현재 KAIST EEWS(Energy, Environment, Water and Sustainability) 기획단장과 정보시스템 국제콘퍼런스 의장을 맡고 있다. 지능정보시스템과 전자상거래 분야 권위자로 국제학술지 전자상거래 리서치 및 애플리케이션 편집위원장, 아시아태평양 정보시스템학술대회 의장, 한국경영정보학회장,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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