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정의 그린로드]에너지절약 예산, 꼭 깎아야 하나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8개국 중 녹색경쟁력 18위. 지난해 말 열린 ‘제13차 녹색성장위원회 및 제4차 이행점검결과 보고대회’에서 나온 우리나라 녹색경쟁력의 현주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첫해인 2008년 8월 핵심 국정 어젠다로 설정하고 의욕적으로 이끌어온 저탄소 녹색성장 성적표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그나마 정부 역할은 6위를 기록해 OECD 평균을 웃돌았지만 녹색수요와 녹색공급은 각각 24위와 15위로 평균보다 낮았다. 가정 에너지 절약습관은 26위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에너지절약 장비 구매 순위와 녹색에너지 분야 민간 투자는 28위로 꼴찌다. 정부는 그동안 목에 힘줘 녹색성장을 외쳤지만 국민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사를 진행한 삼성경제연구소는 녹색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내놨다. 단기적으로 녹색기술·산업 활성화를 통해 공급능력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녹색수요 확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정부 역할이 상위에 위치한 나라 녹색경쟁력이 대체로 우수하게 나타남에 따라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기조를 늦추지 말고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동안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어느 한 정부에서 하다가 없어지는 정책이 아니라 50~100년 이상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국민의 사고나 인식을 바꾸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랬던 정부가 올해 예산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절약,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을 깎았다. 더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예산이 13.5%나 줄어들었다. 심각한 것은 정부요구안 자체도 전년도 예산인 6018억원보다 낮은 5700억원을 신청했다는 점이다. 정부 요구안은 국회 예산확정 과정에서 400억원이 추가로 깎였다.

 통상 예산을 짤 때는 전년도보다 총액을 10% 가량 낮춰 잡고 큰 틀 안에서 세부 항목을 조정한다. 그런 다음 새로 추가할 사업에 새 예산을 배정하는 식이다. 예산 총량을 줄이더라도 정부 핵심 국정 어젠다에 포함돼 있는 예산은 보호받는 게(늘리든지) 상식인데 올해 에너지이용합리화 예산은 되레 깎이는 수모를 당했다. 게다가 국회에서 추가로 삭감된 400억원은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사업자금에서 줄여야 할 상황이다. ESCO 사업은 에너지절약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장려해왔는데도 말이다.

 ESCO 사업자금에 칼을 대는 이유는 작년에 배정한 예산을 다 못썼기 때문이란다. 배정된 예산이 남게 된 것은 시장 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3900억원에 이르는 ESCO 사업자금 중 3000억원을 중소기업 몫으로 책정하고 나머지 900억원을 대기업이 가져다 쓰게 했다.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생각해서 전체의 70% 이상을 중소기업에 배정했지만 중소기업은 쓰지 못했다. 반면 대기업에 배정된 900억원은 3월 사업이 시작하자마자 신청 완료했다. 나중에 중소기업 분을 대기업이 쓸 수 있게 했지만 결국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소진하지 못했다. 이유는 금리였다. ESCO 사업자금은 2.75%로 저리인 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 분을 쓰려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민간펀드 자금을 함께 써야하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을 책정하는 일, 나아가 예산을 줄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줄여야 할 예산과 늘려야 하는 예산을 구분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저탄소 녹색성장이 중요한 국정 어젠다라면 최소한 에너지를 절약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진흥하는 예산은 조금 더 늘려도 되는 것 아닌지 싶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