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까지만해도 심심치 않게 들리던 화석연료 고갈론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시장 급성장에도 화석연료는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 근간이고 쉽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0년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 중 화석연료 비중이 70%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과거 경제성 문제로 생산하지 못한 석유·가스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화석연료 시장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비전통자원으로 불리는 새로운 석유·가스 자원은 세계 매장량은 물론이고 산유국 지도마저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비전통?…이제는 주류=비전통자원은 경제성이 없어 방치했지만 자원개발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산할 수 있게 된 자원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지질학적 특성을 근거로 비전통 석유·가스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원유·가스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최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셰일가스·가스하이드레이트·오일셰일·오일샌드 등이 대표적이다. 비전통자원이 전통적인 원유·가스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매장량 187조㎥에 달하는 셰일가스는 기존 천연가스를 능가하는 매장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비전통자원이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비전통자원은 본격적인 생산과 함께 세계 시장의 권력지도를 완전히 바꿔 놨다. 원유가 섞인 모래 덩어리인 오일샌드 매장량이 풍부한 캐나다는 정제 기술 발달과 더불어 세계 5위권 산유국 반열에 올라 설 전망이다.
캐나다는 하루 150만배럴의 원유를 오일샌드에서 추출하고 있다. 내전을 치르기 전 리비아 원유 생산량을 넘어서는 양이다. 10년내 오일샌드를 통한 원유 생산량이 하루 300만배럴 수준으로 확대되면 캐나다는 이란을 누르고 세계 5대 산유국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미국은 최근 몇 년간 ‘공급의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자체 천연가스 공급이 늘어났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은 에너지 부족분의 약 30%에 달하는 천연가스 수요를 비전통 천연가스로 충당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로 막강한 힘을 얻고 있다. 혈암층에 함유된 메탄가스인 셰일가스는 천연가스의 일종이다. 미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 또한 셰일가스 힘이 작용했다.
미국 천연가스 가채년수는 셰일가스 매장량 확보에 힘입어 2000년 54년에서 2008년 90년으로 늘어났다. 생산한 천연가스 중 셰일가스 비중도 2000년 2%를 밑도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10% 이상으로 증가했고 20년안에 50%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붐을 타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너지 효과도 창출했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IHS 글로벌 인사이트는 셰일가스 시장 확대에 힘입어 2002년부터 미국에 6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특히 셰일가스 개발이 초기단계인 것을 감안하면 2015년께 셰일가스로 인한 신규일자리는 약 87만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통자원…에너지난 해결책으로 부상=중국은 정부 통제하에 있던 셰일가스 등 비전통가스를 포함한 가스 가격을 국제시장 가격에 연동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일부 지역에만 시행하는 시범개혁안이지만 수입 가격보다 낮은 국내 가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온 셰일가스 개발 회사에는 사실상 인센티브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2020년까지 연간 150억~300억㎥의 셰일가스를 생산한다는 중국 정부의 장기 정책 중 하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 가스 수요는 연간 1000억㎥에서 6.7%씩 증가해 2015년 2000억㎥, 2035년 5000억㎥ 달할 전망이다. 세계 가스 수요 증가분의 25%를 차지하는 양이다.
중국 최대 가스개발기업 페트로차이나는 2015년 비전통가스가 전체 가스 생산량의 29%, 2030년에는 약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셰일가스 매장량은 36조1000억㎥로 미국의 24조4000억㎥를 넘는 세계 1위 수준이다. 현재 개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부존지역이 흩어져 있어 생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의 셰일가스 생산 성공 여부는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중국은 셰일가스 개발에 필요한 기술 습득을 위해 미국, 특히 메이저와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셰일가스 개발 선두주자인 쉘·BP·셰브론 등이 중국 국영기업과 공동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 방중 시 미국과 셰일가스 기술 공유를 핵심으로 하는 ‘셰일가스 개발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 셰일가스 상업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과 같이 장단기 가스공급 구조가 변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석유공사 정보기획팀에 따르면 LNG는 향후 10년간 연간 730만톤에 이르는 중국 천연가스 수입물량이 셰일가스 공급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PNG를 공급받는 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미얀마 등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중국·미국 등 에너지 다소비 국가가 자국 에너지난 해결책으로 비전통자원에 주목하면서 세계 에너지시장 판도도 새로운 형국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세계가 비전통자원 개발에 나선 가운데 우리나라도 관련 분야에서 잰걸음을 걷고 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3월 미국 아나다코와 셰일오일 생산광구 지분참여(23.67%)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전통 생산유전 지분인수로 비전통자원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역량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나다코에 우리 개발인력을 파견함으로써 비전통자원 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가스공사는 호주법인 설립 이후 퀸즐랜드 석탄층가스(CSG)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CSG사업은 호주의 풍부한 석탄층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해 LNG로 변환한 후 수출하는 세계 최초의 비전통 가스사업이다. 가스공사는 CSG사업의 하나인 글래드스톤 LNG(GLNG) 프로젝트 지분 15%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2015년부터 20년간 연 350만톤의 LNG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이종호 가스공사 자원개발본부장은 “비전통자원 분야는 세계적으로 아직 관련 기술과 시장이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메이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기 이전에 개발 기술을 확보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비전통자원 프로젝트에 참여해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해 나가는 것이 현재 국내 기업의 전략이자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