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동화기기(ATM)는 은행창구 역할을 대체하는 비대면 채널 핵심기기로 거듭 진화하고 있습니다. ATM을 단순한 사무기기로 취급하는 건 이런 흐름을 간과한 것입니다.”
한 업체 임원은 은행이 ATM을 사무기기로 취급, 역경매 방식으로 통합구매하면서 ATM 기술경쟁력도 함께 추락했다고 하소연했다. 연간 수요 1만대 남짓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북미 등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하지만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은 없다. 그는 그 원인으로 은행 IT통합구매 방식을 꼽았다.
IT통합구매 방식은 2000년대 초반 금융지주사 설립 이후 계열사 IT부서에서 진행하던 구매를 IT자회사나 구매부서(총무팀)가 전담하면서 생겨났다. 공동구매를 통한 가격절감이 가장 큰 목적이다. 구매 업무를 이관해 프로세스를 단순화하고 본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이유로 IT통합구매는 은행뿐만 아니라 전 산업군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IT통합구매가 오히려 ATM 기술 및 서비스 경쟁력엔 ‘독’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격 중심으로 ATM 구매가 이뤄지는 행태에 대한 우려다.
“IT부서가 고객 요구를 파악하고 꾸준히 공급사에 다양한 기능을 요구해야만 공급사도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다”며 “하지만 ATM 도입 사업이 가격 인하와 구매 편의성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고 ATM 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런 방식이 지속되면 기기는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설명이다. ‘을’인 공급사는 결국 ‘갑’인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진보된 성능에 대한 요구가 있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만 공급사도 연구개발(R&D)에 힘을 쏟을 텐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은행은 최근 IT통합구매에 따른 품질저하 문제를 해결하고자 통합구매추진위원회 등 다양한 프로세스를 마련 중이다. 운영의 묘를 살려 가격경쟁력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ATM은 여기에서 조차 누락돼 있다. 은행 거래 가운데 비대면 채널 거래가 90%에 육박하는 현 상황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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